세상살이가 정해진 논리나 규칙대로만 행해지진 않는다. 때론 정상 궤도를 이탈할 때가 허다하다. 정도를 벗어난 외도에서 헛발질도 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니던가. 비록 삶이 이러할지라도 심금을 어루만져주는 유행가 가사만큼은 사실과 다르게 표현해서는 안 될 것이다. 며칠 전, 어느 노래를 듣다가 가사 속 표현에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즉 꽃이 피는 시기가 맞지 않아서이다.
나훈아가 부른 ‘테스 형’ 이 그것이다. 이 노래 가사를 살펴보면,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그저 피는 꽃들이 예쁘기는 하여도/자주 오지 못하는 날 꾸짖는 것만 같다’ 라는 가사에서 ‘울 아버지 산소에 제비꽃이 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라고 했다. 먼저 제비꽃의 생태를 살펴보자. 
 
이 꽃은 대략 3월 중순에서 5월경까지 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어찌 이 시기에 가을꽃상징인 들국화가 등장하여 샛노랗게 피어나 웃고 있을까? 제비꽃과 들국화는 개화 시기가 엄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 앞 구절에 ‘가을날 피어나는 들국화도 수줍어 샛노랗게 웃는다’라고 계절에 맞게 시제(時制)를 표기 했더라면 이 노래 가사는 논리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많은 가요 가사에서 억지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정수라 노래인 ‘아. 대한민국’을 살펴보면 이 가사도 오류가 있다.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우리의 마음속의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후략>’
위 가사 중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에서 ‘행복은 자유로운 것’이라는 말이 있다면 몰라도 없는 이상 이 말은 적절한 표현이 결코 아니다. 어디 이 뿐인가. 이수만 노래 ‘행복’인 경우 ‘ 비 적신 꽃잎’이라는 가사가 있다. 이 내용 역시 비논리적이다. 꽃잎은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가령 가뭄이 심한 지역에 피어난 꽃인 경우만 해도 그렇다. 가뭄에 견디다 못한 꽃이 일일이 비 내리는 지역을 찾아갈 수가 있다면 이 말은 적합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어찌 식물이 이런 행위를 할 수 있으랴. 즉 꽃잎이 스스로 비를 적실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비맞은’이나 ‘비에 젖은’이 맞는 표현이다. 또 예를 든다면 방미 노래인 ‘계절이 두 번 바뀌면’ 경우에도 앞뒤가 안 맞는 가사가 있다.
‘너는 너는 하얀 목련꽃을 좋아하나요’라는 구절이 그렇다. ‘너’라고 상대방을 호칭 했다면 존대어인 ‘좋아 하나요’가 아닌 ‘좋아하나’ 라는 예삿말이 어울린다. 뿐만 아니라 배호 노래인 ‘황금의 눈’도 그러하다. ‘꽃 같은 그 입술은 어느 손에 꺾였나’라는 가사가 있다. 인체 부위인 입술이 어찌 꺾일 수 있단 말인가. 틀린 표현이다. 앞 구절에 나온 꽃에 대한 비유인데 어색하기 그지없다.
하긴 유행가를 부를 때 형용사, 동사, 서술어 등이 제대로 쓰였나를 의식하며 부르는 사람이 몇 되랴. 그러나 수많은 사람 입을 거쳐서 널리 알려지는 게 유행가 아닌가. 그러므로 더욱 작사가들은 시제 및 사리에 맞게 가사를 쓰는 일에 주력해야 한다. 이밖에도 불일치 가사가 또 있으니 김상희 노래 ‘관광 열차’이다. ‘노래 실은 관광 열차 웃음 실은 관광 열차/ 철길 따라 뱃길 따라 금수강산 구경 가자’에서 열차가 철길 따라 달리는 게 원칙 아닌가. 그런데 웬 느닷없이 열차가 뱃길 따라 달릴 수 있단 말인가.
유행가 문맥이나 논리 면에서 살펴볼 때 이에 어긋나는 가사는 분명코 탈법적인 문장이다. 한낱 유행가 가사이다. 하지만 이런 비논리적인 문장은 대중들에게 회자 되면서 자칫 아름다운 우리말이 오염 되고 왜곡될 가능성이 크다. 필자가 이 점을 심히 우려 한다면 지나치려나. 그래 조리정연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형태를 지닌 가사로 불리는 유행가 몇 곡에 대하여 쓴 소리를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