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덕 포항시장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의대 정원 확대가 다시 논의되는 가운데, 포스텍(POSTECH) 의과대학 설립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포항시는 2027학년도 의대 정원 배정을 ‘골든타임’으로 보고, 지방의대 신설을 통한 의료 혁신과 바이오 국가전략 실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 바이오 중심도시로 급부상한 포항… “의대가 마지막 퍼즐”   포항은 지난 6월, 정부가 지정한 국가첨단전략산업 바이오 특화단지에 최종 선정됐다. 이는 전국 5대 산업 중심축 가운데 하나로, R&D-사업화-인력양성-창업지원까지 아우르는 바이오 클러스터를 의미한다. 포항시는 이를 기반으로 그린바이오 벤처캠퍼스, 동물용 의약품 산업화 거점, 해양바이오 실증연구센터 등 수많은 기반 사업을 연달아 유치하고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조각이 빠져 있다. 바로 의과대학이다. 의료기술이 현장에 적용되기 위해선 임상의와 연구자의 협업이 필수인데, 포항에는 의료 인력 배출 기관이 부재하다. 시 관계자는 “지금의 바이오 생태계는 대학병원과 의대라는 중심축이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고 했다. ◆ “의사과학자 양성은 국가 생존 전략”… 포스텍이 그리는 새 모델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팬데믹은 의료인력의 질적 전환, 즉 융합형 인재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의사이면서 동시에 연구자, 과학자, 데이터 해석자가 가능한 ‘의사과학자(MD-PhD)’가 그것이다.미국 하버드대, MIT 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MD-PhD 트랙을 구축해 바이오메디컬 산업을 선도할 핵심 인재를 길러냈다. 반면 한국은 아직 이런 제도적 기반이 미비한 상태다. 현재 국내 의대 중 제대로 된 MD-PhD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손에 꼽힌다.포스텍은 이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2년, ‘융합대학원 의과학 전공’을 신설해 의학, 생명과학, 공학을 아우르는 커리큘럼을 만들었고, 기초의학 중심의 교육 실험을 지속하고 있다. ◆ “포항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사과학자 양성 인프라를 모두 갖춘 도시”   포항의 강점은 도시 전반에 깔린 R&D 인프라와 공공·민간의 의지다. 3세대·4세대 방사광가속기, 극저온 전자현미경, 생명공학연구센터, 세포막단백질연구소 등은 이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 인프라다. 이는 의료영상, 신약개발, 단백질 구조 분석 등에서 필수적인 장비로, 의사과학자 교육에 직접 연결된다.포항시는 지역 종합병원들과 전국 최초로 ‘지역의료 공동협력 MOU’를 체결하고, 스마트병원 설립도 병행 추진 중이다. 이는 교육-진료-연구를 삼위일체로 구현하려는 모델이다.지역 주민 30만 명 이상이 동참한 서명운동, 포항시의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의대 설립 지원 조례 등도 주목할 만하다. 포항이 정치, 행정, 학계, 의료계, 시민까지 전방위적으로 움직이는 유일한 도시라는 점에서 전국 지자체 중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다. ◆ 경북, 상급종합병원 ‘제로’… 지역 격차 해소 위한 유일한 해법   경북은 전국 17개 광역지자체 중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유일한 지역이다. 진료 역량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의료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애초에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치료가능사망률, 입원환자 사망률, 뇌졸중·심근경색 골든타임 사망률 모두 전국 상위권이다.이에 따라 중증 환자나 응급환자는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이송되고, 연간 수천억 원의 의료비가 지역 밖으로 빠져나간다. 포항시가 의대와 스마트병원 설립을 동시 추진하는 이유다. ◆ 정원 외 입학·연구전공의 등 제도 논의도 속도   최근 국회에선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제도 개편 논의가 본격화됐다. ‘정원 외 입학 허용’, ‘연구전공의 제도 신설’, ‘기초의사 인정의’ 등 연구 중심 인재를 위한 틀을 재정비하자는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으며, 차기 정부 역시 의사과학자 육성을 국가전략의 핵심축으로 검토 중이다.포스텍은 이같은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독립적인 ‘MD-PhD 생태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기존 체계 안에서 틀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새롭게 디자인하겠다는 발상이다. ◆ 2027년, 대한민국 의료정책의 분기점 될까   2027학년도 의대정원 재조정은 단순히 숫자를 나누는 작업이 아니다. 국가 보건안보와 지방 균형발전, 산업 전략을 아우르는 미래 설계가 필요하다.포항은 그 중에서도 유일하게 ‘의사과학자 양성’이라는 명확한 방향성과 국가전략산업 연계성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 포항의 선택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 바꾼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포스텍 의과대학은 단지 지역사업이 아니다. 대한민국 바이오헬스 산업을 뒷받침할 국가 플랫폼이자, 의료 불균형을 해소할 핵심 해법”이라고 말했다. “2027년 정원 배정에서 반드시 의사과학자 양성 정원을 확보하겠다”고도 덧붙였다.포항시와 경북도, 포스텍, 지역 정치권은 정부 부처와 국회를 상대로 지속적인 설득전을 벌이고 있다. 서울역·대전역·동대구역 등에서 전국민 대상 홍보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포항이 준비한 모델은 실험적이지만, 단순한 정원 확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의과대학이 단지 의사를 배출하는 기관에서 벗어나, 지역·산업·국가 전략과 연계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는지 그 첫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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