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도 삶의 일부분인가 보다. 어느 향에선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이런 냄새는 문학 작품에도 등장 하곤 한다. 강신재 소설인 「젊은 느티나무」 서두만 해도 그렇다. 이 소설 주인공 숙희는 글 첫머리에서 사랑하는 이복 오빠인 그에게서는 늘 비누 냄새가 난다고 표현했다. 그러고 보니 어린 날 아침 일찍 부엌에서 풍겨 나오는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새콤한 열무김치 등 음식 냄새에 잠을 깨곤 했었다.
이게 아니어도 요즘 가끔 떠오르는 내음이 있다. 나무 냄새가 그것이다. 나무 냄새를 처음 맡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하여 어느 목재소 앞을 지나칠 때다. 그곳 마당가에선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보얀 속살을 드러낸 큰 나무 토막을 대패로 밀고 있었다. 그 때 채 마르지 않은 소나무였는지 송진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가 왠지 참으로 신선했다.
어렸을 때 추억은 때론 추상성을 지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반세기 가까운 그날을 엊그제 일처럼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나무 내음이 독특해서다. 또한 그날 라디오에서 들었던 애조 띈 노래 때문이기도 하다. 소나무 송진 내음에 취하여 코를 벌름거리며 그 나무 등걸 앞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때다. 땀을 뻘뻘 흘리며 나무에 대패질을 하는 그 아저씨 옆에 놓인 라디오에선 마침 이미자 노래 ‘동백 아가씨’가 흘러나왔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그 당시 필자 나이 겨우 여덟 살이었다. 그러나 ‘동백 아가씨’ 노래를 듣는 순간 한껏 가사에 함몰 했었다. 갑자기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필자 곁을 떠난 막내 이모가 보고 싶어서다. 대문 만 바람에 열려도 이모가 오는 줄 알고 밖을 내다보곤 했었다. 그날 나무 냄새에 취하며 듣게 된 ‘동백 아가씨’노래 가사다. 이모에 대한 그리움을 자아내는 노래여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입 속으로 따라 불렀다. 노래를 부르노라니 구슬픈 음색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젖기도 했었다.
이모와 이별을 통하여 그것이 안겨주는 슬픔을 일찍이 체득한 셈이다. 이로보아 세상엔 영원한 것이 없다. ‘만남은 이별의 전주곡’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무덤까지 동행 하는 인연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모님 역시 노쇠하면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난다.
일가친척만 해도 그렇다. 어린 날 필자를 그토록 사랑해주고 아껴주던 외가 식구들이 이젠 막내 이모밖에 생존해 계시지 않는다. 필자가 갓난아기 때 울면 등에 업고 밤새 어르고 달래주던 큰 이모도 세상을 하직했다. 어린 날 외가에서 마당가에 돌아다니던 수탉이 쫓아와 울면서 부엌으로 뛰어들면, 무명 앞치마 속에 필자를 숨겨주던 자애로운 외할머니도 돌아가신지 오래다. 울고 보챌 때마다 나를 감싸주던 외할머니 무명 앞치마에서 맡았던 고소한 들기름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외가 마당에 매어놓은 그네에 필자를 태우며 동요를 불러주던 외삼촌도 작년에 돌아가셨다.
친정어머니 또한 치매와 지병을 지녀서 섬망 증세를 보이며 하루하루 자식들과 이별을 서두르는 중이다. 이즈막 필자도 나이를 먹나보다. 젊은 날과 달리, ‘이별’, ‘그리움’ 이란 단어를 대하거나, 이미자의 노래 ‘동백 아가씨’ 노래를 듣노라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저려온다.
기다림은 그리움과 함수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젊은 날엔 사랑하는 사람을 못내 그리워한 경험이 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 펜으로 백지에 정성껏 눌러 쓴 편지로 가슴 절절한 그리움을 전하였다. 그리고, 얼마나 그로부터 답장을 애타게 기다렸던가.
요즘 카톡이나 인터넷으로 마음을 전할 때와는 그 농도가 다른 애틋한 그리움이오, 기다림이기도 했다. 그때는 현대와 달리 남녀 사랑에도 특유의 내음이 짙게 배어 있었다. 물질 앞에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고 사람 그 자체만을 아끼고 존중하는 인간적인 냄새가 배인 진정한 사랑, 나이 탓인가. 요즘 따라 그런 사랑이 부쩍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