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산미나리가 우리집에 들어왔다. 아내의 지인이 주었단다. 저녁 밥상에 미나리전이 올라왔다. 겉바속촉의 미나리전 맛에 입안이 황홀했다. 이어서 미나리무침을 맛보았다. 아삭아삭한 식감과 미나리향에 밥이 술술 넘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산미나리 덕분에 저녁이 행복했다. ‘엄마 엄마 이리 와 요것 보세요/병아리 떼 뿅뿅뿅뿅 놀고 간 뒤에/미나리 파란 싹이 돋아났어요’ 이 동요처럼 예전에는 물이 있는 곳마다 미나리가 잘 자랐다. 미나이꽝이라고 불렀다. 여기저기 미나리꽝 풍경이 정겨웠다. 그런데 미나리꽝에는 거머리가 많았다. 모내기 한 논처럼 거머리 살기 좋은 곳이다. 그래서 미나리꽝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오면 거머리의 먹이감이 된다. 다리가 따끔해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거머리를 탁 치면 피를 잔뜩 먹은 통통한 거머리가 툭 떨어진다. 거머리 떨어져 나간 자리가 아프다. 모기처럼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인간을 표적으로 삼는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미나리철이 되면 학생들이 미나리 전투에 내몰렸단다. 미나리를 뜯어오면 그걸 팔아 학교 재정에 충당했다고 한다. 주변의 미나리꽝이 바닥이 나면 학생들은 강을 건너 미나리를 뜯으러 가야 한다. 강을 건너다 학생들이 떼죽음을 당해 모래사장은 울음바다가 되고 눈물이 강을 이룬다. 새터민이 들려준 아픈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하였다. 향긋한 미나리가/동토에 돋아나면/거머리처럼 아이들을 괴롭힌다//변또 싸들고 학교에 가면/공부도 못하고/밖으로 내쫓긴다//이미 가까운 곳에는/새끼 미나리도 없다/다른 고장으로 갈 수밖에//손에 손잡고 조심조심/아이들이 강을 건넌다/아주 위험천만이다//갑자기 한 아이가/강바닥에 미끄러진다/줄줄이 강물 속으로 사라진다//아무 일 없다는 듯/강물은 무심히 흐르는데/미처 피지도 못한 꽃망울들이/백사장에 나란히 누워있다(미나리 전투 권오중) * 동토:북녘땅 산미나리라고 불리는 회향(茴香) 또는 펜넬(Fennel)은 여러해살이 풀이다. 상해가는 육류나 생선류에 쓰면 원래 맛으로 돌아온다고 해서 회향이라고 불린단다. 원산지는 지중해 지역으로, 한반도 전역에서도 잘 자라지만 습한 곳을 좋아한다. 7월이면 꽃이 피며 독특한 향내가 강하게 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줄 때 빈 줄기 속에 불씨를 숨겨 전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전에 ‘미나리’ 영화가 화제였다. 2020년 개봉한 미국의 드라마 영화로, 정이삭이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윌 패튼,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 스콧 헤이즈가 출연했으며, 미국 아칸소 주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농장을 가꾸는 한인들의 삶을 영화에 담았다. 타 문화에 대한 포용력과 미주 한인들의 강인한 정착력이 미나리를 닮았다. 이 영화는 2020년 골든 글로브상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음악상 후보에 올랐으며 또한 영화배우조합 캐스팅상 후보에 올랐고, 제74회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에서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배우조합과 영국 아카데미를 비롯해 미국 아카데미까지 연이어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나무의 일품은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요, 꽃의 일품은 눈 속에서 피는 매화이며, 야채의 일품으로 미나리를 꼽았다. 미나리의 속성을 보고 3가지의 덕을 배운다는 근채삼덕(芹菜三德)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미나리는 진흙 속에서도 자라는 포용력, 음지에서 자라는 의지, 가뭄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미나리는 알카리성 음식으로 혈액의 산성화를 막고 정화하는 효능이 있다. 특히 봄철 미세먼지로 생긴 염증 수치를 낮추는 효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속세를 상징하는 진흙탕 속을 정화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미나리의 강인한 생명력과 포용력을 배워 작금의 혼탁한 세상이 정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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