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백마지기’라는 강원도 평창의 넓은 평원에 샤스타데이지 꽃밭이 장엄하다고들 해서 사진 찍는 친구를 따라 여행 겸해서 동행했습니다. 영주를 지나니 경북에서 강원도로 접어들어 영월 ‘김삿갓면’을 지납니다.    예전 이름은 하동면이었으나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의 고향이자 그의 묘가 그곳에 있는 관계로 2009년에 개칭하였다는군요. 순우리말 지명이 참 친근합니다. 알고 보니 영월에는 이 외에도 한반도면과 무릉도원면이라는 독특한 행정지명이 더 있더군요. 한반도면은 평창강이 휘돌아가며 만든 한반도를 닮은 지형이 있어서, 무릉도원면은 오염되지 않은 자연과 아름다운 경관이 자랑거리가 되매 개칭하였다고 합니다. 무릉도원면은 실제로 같은 영월의 타 지역보다 교통이 열악한 편인만큼 자연 풍광의 아름다움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조선시대 문장가인 양사언이 평창군수로 있을 때 이곳의 경관을 구경하고 ‘여기가 무릉도원인 듯’하고 감탄하여 무릉리와 도원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두 마을의 이름을 따서 ‘수주면’이던 이전 이름을 2016년에 무릉도원면으로 바꾸었다 합니다. 무릉도원은 중국 남북조시대 명문장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일컫는 말로 한자문화권에서는 이상향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한 어부가 계곡에서 고기를 잡다가 물에 떠내려 오는 복숭아꽃잎을 보고 기이하게 여겨 거슬러 갔더니 복숭아꽃이 만발한 숲이 있습니다. 숲이 끝나는 곳에 동굴이 있어 들어가니 바깥세상과 동떨어진 아주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 펼쳐집니다.    마을 사람들은 진(秦)나라 때 사람들로 전란을 피해 이곳으로 들어 온 후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마을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어부가 떠나려하자 그들은 어부에게 비밀을 지켜줄 것을 당부합니다. 그러나 이후 어부가 다른 사람 몇과 다시 그곳에 가고자 했지만 그곳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 도화원기의 내용입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향은 전란(戰亂) 없는 평화로운 곳, 춥지도 덥지도 않아 농사가 잘 되고 땅에 들인 노력이 주는 소출로 가족이 생활하고 객(客)에게 대접할 여유 정도를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사회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무력이 곧 힘이던 시대에 서로 패권을 차지하려는 제후들의 야욕이 부르는 전란은 아무 관련 없는 일반 백성에게 너무 큰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전쟁에 병사로 불려나가면 자신의 생명도 보장받을 수 없거니와 가족들은 가장이나 건장한 일꾼이 될 아들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설령 살아 돌아온대도 그동안 돌보지 못해 묵정밭이 된 논밭과 실농한 농삿일이 가족의 생계를 잇기도 어렵게 했을 것입니다.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조건은 일생을 사는 동안 전란을 겪지 않고 농사가 잘 되어 배 곯지 않으며 이웃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을 최우선으로 꼽았던 것 아닐까요? 무릉도원과 같은 의미의 말로 서양에서는 유토피아가 있습니다. ‘유토피아’는 토머스 모어가 쓴 동명의 소설에서 유래한 말로 현재는 두루 이상향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토머스 모어는 16세기 영국의 법률가이며 정치가로 헨리 8세의 재혼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을 당한 인물입니다.    그는 인문주의자로 덕이 높고 능력이 탁월한데다 겸손하고 매우 청렴결백하여 훗날 가톨릭과 성공회 모두에서 성인으로 추앙되었습니다. 유토피아에는 토머스 모어 자신이 이상적이라 여긴 나라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간 생각을 담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제, 사유재산 철폐와 기본소득이 보장된 공유 경제, 공공주택, 종교의 자유, 남녀평등교육 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나라가 유토피아입니다. 책에 담긴 토머스 모어의 사상은 500년 전의 생각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무릉도원이든 유토피아든 인간은 항상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꿈꿔왔고, 이상향에 대한 그런 열망이 사회 변화를 추구한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거란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유토피아’는 그리스어에서 ‘없다’는 말과 ‘장소’란 말을 가져와 만든 합성어로 ‘존재하지 않는 장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어부가 다시는 무릉도원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했다는 도화원기의 결말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이상향’은 단지 이상향(理想鄕), 즉 꿈으로만 존재하는 곳이라는 뜻일까요?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이처럼 추구하는 이상이 있기에 인간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끌어 올 수 있었을 겁니다. 대선이 며칠 앞으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요임금과 순임금 치하 같은 태평성대는 백성들이 왕이 있는지조차 인식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유토피아를 함부로 바랄 수는 없지만, 시끄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대한민국의 물길을 지금보다 좀더 나은 방향으로 터 줄 수 있을 지도자가 선택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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