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정치엔 관심이 없는 필자다. 이를 반(反)권력적이고 약자 편에 서는 문인이 지닌 생리 때문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동안 지나치리만치 정치엔 무관심했다. 이런 필자가 요즘은 달라졌다. 올핸 시국이 하 수상해서였는가. 지난 2024년 12·3 계엄 사태 이후 텔레비전 뉴스에서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곤 하였다.
그래서일까? 며칠 후면 치를 대통령 선거가 왠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이 때 꼭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 선거를 목전에 두자 갑자기 엉뚱한 궁금증이 일었다. ‘옛날 왕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까?’ 라는 의문이 그것이다.
또한 그들은 어떤 장르 글들을 읽었으며 그것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에 이르자 어디선가 읽은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조선 시대 영조는 김만중 소설 「구운몽」을 몇 번이고 읽었다고 한다. 이 글에서 어려운 한문책이 아닌 한글로 된 문학 책을 왕이 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영조는 한글로 적힌 소설을 즐겨 읽고는 신하들에게 우스갯소리도 곧잘 하였다고 한다.
영조가 신하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옛날 어느 아낙이 아이가 심하게 울자 한문책으로 얼굴을 덮었다네. 주위 사람이 ‘무슨 까닭으로 한문책으로 아이의 우는 아이의 얼굴을 덮느냐?’라고 물었더니 아낙이 말하기를, 얘 에비가 한문책만 들면 자리에 눕고 바로 잠이 들기에 이놈도 잠 좀 자라고 한문책으로 얼굴을 덮어 주었지요.” 라는 말이었다. 이 우스갯소리는 영조가 한글 소설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밤을 새워 읽으니 신하들에게 자신을 재우려면 한문책을 읽어달라는 농담이었던 것이다. 반면 영조 손자인 정조는 패관문학(稗官文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이 글은 전한다. 심지어는 혐오한 나머지 당시 청나라 통속(通俗) 소설을 몰래 읽다가 걸린 관리들을 파직하기도 했다. 이 때 성균관 유생 이옥이라는 사람은 과거 시험 답안지를 패관소설 문체로 적었다가 정조에게 발각돼 군대에 강제 징집 당하기도 하였단다.
그렇다면 한국 역대 대통령들 책꽂이엔 어떤 문학 서적이 꽂혀 있었을까? 못내 궁금하다. 그러고 보니 문학적인 소양이나 관심을 보인 대통령이 그리 흔치 않다. 하다못해 이승만 대통령은 서정주 시인에게 맡겼던 자신의 전기(傳記) 내용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출간도 막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정희 대통령 유신(維新) 정권 때는 투옥 당한 문인도 많았다. 김영삼·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는 문학 탄압은 없었다. 노무현·김대중 정부 시절엔 당시 청와대에서 애독했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잖은가. 이명박 대통령은 박경리 소설가가 세상을 뜨자 빈소에 훈장을 바치고 조문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문인들을 만나 문학 사조를 질의하거나 문인들의 위상과 복지를 위하여 논의했다는 소식은 전무(全無)했던 것으로 안다.
대통령이든 서민이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이번 제 21대 대통령 당선자는 이성과 지성, 그리고 감성을 지닌 분이었으면 한다. 그래 필자는 이즈막 전과 달리 정부에서 보내온 책자형 선거 홍보물을 꼼꼼히 훑어보곤 한다. 책자 속 어느 인물이 국민 행복과 안녕, 경제, 복지 등을 위해 고민하고 헌신적으로 일할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서다. 이 때 국민 한 사람으로서 또한 문인으로서 욕심을 부릴 일이 있다. 향후 대통령 당선자가 국정을 펼칠 때 국민들은 물론이려니와, 문인들의 여러 애환 및 피부에 와 닿는 실질적인 복지에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아무리 생산성이 없어서 경제와는 무관한 무용(無用)의 문학일지언정, 그 실용성은 참으로 크나크다는 사실도 인지하였으면 한다. 때론 펜이 칼보다 강하잖은가. 세상 탁류를 정화 시키고 오류와 모순을 바로잡는 게 문인이 쓴 글의 위력이기도 해서다.
필자 바람대로 지혜로운 직관, 예지력, 판단력, 인간적인 면모 등을 갖춘 대통령이 선출 될지는 오는 63 선거가 끝나봐야 비로소 알 것이다. 이번 새로 당선될 대통령은 미국, 전(前) 대통령 빌 클린턴처럼 섬세한 감성과 혜안을 지닌 분이라면 더더욱 좋겠다. 그는 콜롬비아 노벨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신작 소설이 나오기도 전에 가제본을 입수해 읽었다. 남미 나라 현실과 마법적인 환상을 버무린 마르케스 문학이 아니던가. 이에 빌 클린턴 대통령은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한편 이 소설을 통하여 당시 미국에 비판적인 남미 민중들 정서를 꿰뚫어 보려 했다는 점에서 그의 문학 서적 독서가 참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이제 곧 5월 29일- 30일 사전 선거 및 6월 3일 선거 날이 다가온다. 이날 국민이 행사한 소중한 한 표 한 표가 대한민국을 책임질 진정한 지도자를 선택할 중차대한 시간이다. 과연 대통령은 누가 될까? 예로부터 왕은 하늘이 정 해준다고 했던가. 오늘은 모처럼 밤하늘을 우러르며 무수히 빛나는 별들에게 이 사실을 은밀히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