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국 전쟁 통신' 이란 책을 읽었다. 세르주 브롱베르제가 엮고 종군 기자 4명이 직접 목격했던 지난 6·25 전쟁 참상에 대한 기사를 실은 책이었다. 그들은 한반도 2만km를 누비며 그 당시 한국 전쟁 실상을 해외에 첫 타전하기도 했던 기자들이다.  이 책 290페이지 내용 전부가 매우 인상 깊다. 그중에서," 흥남부두에서였다. 많은 민간인이 접근을 막으려고 헌병이 쳐놓은 부두 입구 철조망 사이로 배를 타려고 넘어왔다. <중략> 계속해서 도착한 사람들이 철조망을 흔들었다, 선량하고 용감한 이 헌병은 이렇게 울고불고 통 사정하며 그 손을 잡고 늘어지는 여자들의 물결 앞에서 어쩔줄 몰라했다. <중략> 바로 그 자리에 AP 통신의 톰 래버트 기자가 있었다.    그는 한동안 피란민들의 이야기를 듣더니 곧장 한 걸음에 3 사단 지휘소로 달려갔다. 5분 뒤 술(Soule) 장군이 탄 마지막 지프가 부두 입구에 급정거했다. 피란민을 승선 시키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것도 태울 수 있는 최대한으로" 라는 대목에선 당시 피란민들이 겪은 고통과 절박함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들은 한국 전쟁의 실상을 보도하려고 온 외국 기자들이다. 윗글에서 그런 그들이 남다른 이타심을 발휘한 게 오롯이 용해된 내용이어서 더욱 감동적이다.   또한 급박한 순간에 많은 피란민들을 안전하게 배에 오르게 한 술(Soule) 장군이다. 따뜻한 그 마음에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6·25 전쟁 발발 때 세계 16개국 장병들이 UN군으로 참전했다. 이 때 그들과 함께 펜과 카메라를 무기삼아 참전한 종군 기자들이 있었다. 이 책은 AFP와 '르피가로' 등 프랑스 언론 소속 종군 기자 4명이 전장을 누비며 송고했던 전쟁 기사를 묶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은 1951년 한국 전쟁이 일어난 후 1년 여 후인 1951년 가장 먼저 6·25 전쟁에 대한 처참한 실상을 세상에 알린 책이기도 하다.  이 종군 기자들 나이는 주로 20대였다. 누군가가 이들에게 "한국에 가고 싶지 않느냐?" 라는 제안을 하자 그들은 기꺼이 위험한 전쟁터인 한국행을 결심했다. 8월 2일 부산항에 도착한 그들이다. 그로부터 1951년 4월까지 한반도 전역 무려 수만km를 무거운 카메라를 지고 눈앞에 빗발치는 총알도 아랑곳 하지 않고 뛰어다녔다.  피란민들은 6·25 남침과 9·28 수복, 그리고 1·4 후퇴에 따라 남으로 북으로 피란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그저 앞 사람 발걸음을 따라 걸어야 했다.   누가 봐도 그 모습은 딱하여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기자들이라고 전쟁터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눈앞에서 순간에 동료를 잃는 처절한 슬픔, 야간 매복에 걸려서 생사 고비를 수없이 넘기는 등, 종군 기자들 역시 군인들처럼 생명에 대한 위협을 느꼈을 게 뻔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몸 사리지 않고 한국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렸다.  한국 땅에서 6·25가 발발한지 어언 75년이 된다. 해마다 이 날을 맞이하며 다시금 우리나라 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하곤 한다. '한국 전쟁 통신' 이 책에서 흥남 부두 이야기를 논하노라니 절로 현인이 부른 옛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흥얼거려진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금순아 어데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 홀로 왔다'위 노래 가사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흥남 철수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함경남도에 있는 흥남 항구에서 10만 여 명 피란민들이 유엔군 도움을 받아 선박으로 월남한 사건을 말한다. 그 때 마침 겨울철이라 기온은 영하 20도를 넘는 강추위였다. 이런 혹한 속에서도 벌떼처럼 피란민 인파가 몰린 흥남 항이었다. 이 때 이곳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그곳에 몰렸던 피란민은 30만 명에 달하였다. 그러나 이들을 태울 배가 부족해서 결국 마지막에 배를 탄 사람은 9만1천명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흥남에서 가족을 잃어버린 피란민들이 많이 생겼을 것이다. 이 노래는 그 때 헤어진 남매가 느끼는 처절한 한과 그리움을 다루었다.  산 좋고 물 맑은 한반도를 피와 눈물로 얼룩지게 하고 동포끼리 서로 총을 겨누었던 전쟁이 6·25 사변이다. 이 전쟁으로 인하여 발생한 이산가족이 어찌 흥남 부두 피란민에 국한 되랴. 이 땅에 전쟁 총성이 울린 이후 수많은 희생자들은 물론, 이산가족이 생기기도 했다.   그 당시 낙동강을 따라 교착 되었던 전선은 빙하처럼 꽁꽁 얼어붙어 꼼짝 못했었나보다. 이 와중에 인천 상륙 작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종군 기자들은 맥아더 장군과 동행하며 야만적인 전쟁 공포를 피부로 실감했다. 이 때 한반도에서 벌어진 처참한 전쟁 실상은 단테가 지은 '신곡' 지옥 편에 비유해도 지나치지 않았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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