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시절이지만 20대의 젊음이었을 때는 하루하루가 그다지 큰 변화 없고 흥미 끌 사건도 생기지 않는 날들이 지루하고 권태롭다 여겼습니다. 학교에 가고 정해진 시간표대로 강의에 들어가서 타성처럼 강의를 듣고 나면 과 친구들 몇몇이 모여 늘 가는 막걸리집에 앉아 답도 없는 토론에 열 올리거나 현실에 비분강개하다가도 때가 되면 다들 집으로 돌아가곤 하는 날들이 이어지는 나이가 재미없어서 어서 빨리 그 나이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지나간 날이 앞에 남은 날보다 몇 배가 되는 나이가 되고 보니 어리석었던 그때가 새삼 부끄럽습니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큰 변화나 큰 사건 없이 하루가 순탄하게 저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몰랐던 그 나이의 나는 아망만 센 우물 안 개구리였던 셈입니다. 어제도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 오늘이 내일로 평안하게 흐른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뉴스를 들여다보기 두렵습니다. 특히 세계 여러 곳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나라간의 분쟁 소식이 마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연달아 들려오니 비록 내 나라 안의 일은 아닐지라도 걱정이 됩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지도 않은데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촉발시킨 이스라엘과의 무력충돌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인질로 구금되기도 했습니다. 잦은 미사일 폭격이 일상의 삶을 파괴하고 가족이 하늘 아래 누워 쉴 곳도 없습니다.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관계가 어느 정도 수습이 되는가 하더니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의 영토를 향해서 미사일을 주고 받는단 소식에 이어 미국도 개입하여 이란에 폭탄을 퍼부었다는 뉴스가 TV 화면에 이어집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싸움으로 석유 수급이 불안정하면 국내 경기도 따라서 요동을 칠 것이니 다른 나라의 분쟁이며 남의 이야기로만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연일 이어지는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아무런 사건이 생기지 않는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절하게 깨닫습니다. 그것은 개인으로 범위를 좁혀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이 어제와 같고 내일이 오늘과 같은 날이란 건 그만큼 내 삶이 큰 기복 없이 흘러간다는 의미겠지요. 
 
그저껜가 우연히 이젠 고인이 된 루이 암스트롱이란 재즈 가수가 ‘What a wonderful world’을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서 노래 가사가 전하는 일상의 평범한 삶이 얼마나 경이로운 행운인지를 다시 확인합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찢어지게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나 공부보다는 생계를 위해 돈을 버는 데에 바쁠 수밖에 없어 결국 11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또래 아이들과 중창단을 만들어 거리에서 노래하면서 다른 잡일도 병행하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랬던 그의 삶이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고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겠지만 하얀 이를 활짝 드러내며 노래 부르는 그 특유의 표정은 그 자신이 거쳐 온 크고 작은 굴곡에서 이미 해탈하여 진정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에 공감하고 몰입한 경지를 보입니다.
그가 경탄하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란 크고 장대한 세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초록색 나무들과 빨간 장미가 너와 나를 위해 피어 있으니, 나는 생각하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축복 받은 밝은 낮과 성스러운 어둠의 밤이 있으니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What a wonderful world 앞부분 내용 해석)
이어지는 내용도 길을 거니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 거리에서 만난 친구들이 반갑게 악수하는 모습, 아기들이 우는 것과 자라가는 것, 그 아이들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테니 그런 세상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노래합니다.
매일 내 곁에서 볼 수 있는 자연, 내 곁을 스치는 사람들, 자라나는 아이들. 우리가 가끔은 권태롭다 여기기도 하는 흔한 일상사에서 세상의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이 내 가슴 한 부분에 화살처럼 날아와 꽂힙니다. 일상을 깨뜨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저무는 하루가 얼마나 다행이며 감사할 일인지를 깊이 깨닫습니다. 
 
지구마을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비극을 보며 나의 안녕을 감사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지만, 폭격으로 부서진 건물의 잔해와 치워주는 이도 없어 거리에 방치된 시신들 영상을 보고 나도 모르게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하지만 인식하든 하지 못하든 인간이기에 벗어나기 어려운 나의 이기심을 농부 전우익선생의 책 제목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현암사)’를 빌어와 반성해봅니다. 서로서로 이웃으로 연결되어 있는 오늘날 세상에서 나만 큰일 없이 하루를 넘긴 것에 안도하지 말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분쟁이 종식되어 다시 평화를 찾은 지구마을의 이웃들이 하루를 큰일 없이 마무리하고 편안한 잠에 들 수 있을 때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what a wonderful world!)이라고 노래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