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TV를 꺼버려요.” 요즘 주변에서 이런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정치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 냉소와 실망이 공기처럼 스며들어 이제는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누군가는 이를 ‘정치 무관심’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다. 정치가 남긴 감정의 멍이다. 말하자면, 정치라는 이름의 집단 트라우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정치는 원래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를 움직이는 지혜로운 장치였다. 그러나 지금 정치의 입은 거칠어졌고, 귀는 닫혔다. 분열과 낙인은 대화의 자리를 밀어내고, 공론장의 문은 스스로 닫히고 말았다.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편 가르기’가 되었다. 좌우의 극단은 더 거세졌고, 공론의 장은 점점 무너지고 있다. 이것은 마치 민주주의의 면역체계가 망가진 것과 같은 증상이다.우리는 지금, 정치를 진료실에 앉혀야 할 때다. 필요한 건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정밀한 진단이다. 정치는 마치 불안한 아이처럼 소리를 지르며 주목받고 싶어 한다. 지금의 정치는 집단 우울증의 전조 증상을 보이고 있다. 감정과 사고의 왜곡, 관계의 단절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모습이다.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마음의 병을 진료해왔다. 공공의료와 사회정신건강의 현장에서도, 정치와 사람의 감정이 충돌하는 장면을 수없이 목격했다. 이제 정치란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감정의 생태계'로 다가온다.리처드 닉슨은 이미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있었지만, 자신을 향한 불신과 의심을 이기지 못해 결국 도청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권력에 대한 불안은 단순한 ‘승리’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정치인의 불안, 강박, 자기 확신 결핍이 어떻게 병적인 결정을 낳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정치인의 내면 감정은 국적과 시대를 넘어 공통된 구조로 나타난다. 오늘날 우리 정치에서도, 야당일 땐 투명성을 외치다 여당이 되면 입을 닫는다. 권력이 바뀌어도 패턴은 되풀이된다. 정치인의 내면 감정은 때로 제도라는 그물망을 비껴가며 반복된다.그러나 그 감정이 제도적 통제 없이 표출될 때, 정치 전체가 병들고 국민이 고통받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같은 실망을 되풀이하게 된다.정치는 본래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는 오히려 사람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승리하는 정치가 아니라,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정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에서 비롯된다.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회복의 방향을 모색해야 할까.첫째, 정치는 말싸움이 아니라 공감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분열을 부추기는 언어는 갈등을 키울 뿐이다. 상대를 향한 경청과 이해는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둘째, 진영이 아닌 원칙으로 정책을 평가해야 한다. 내 편이면 무조건 옳고, 남의 편이면 무조건 그르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관성과 공정성을 기준으로 옳은 것을 옳다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셋째, 정치는 공적 돌봄의 최후 보루가 되어야 한다. 국민이 삶의 위기에서 혼자가 되지 않도록 곁을 지키는 것, 그것이 정치의 본질이다.그러나 방향만 제시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작은 변화들이다. 정치를 다시 신뢰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선택일 수 있다.나 하나 바뀐다고 달라질까?”라는 질문에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용기를 더한다면, 그것이 곧 정치 회복의 첫 단추다.예컨대, 감정 대신 사실에 귀 기울이고, 진영이 아닌 진정성으로 지도자를 바라보는 것. 그런 자세 하나하나가 회복의 시작이 될 수 있다.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냉소를 넘어서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이웃을 향한 연대의 시선, 그 질문이 회복의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이면, 우리 모두에게 질문이 생긴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정치는 어떤 모습일까?”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삶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정치. 갈등을 증오가 아니라 이해로 풀고, 다름을 존중하는 공동체의 정치. 그런 정치는 결코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다. 서로의 삶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실천, 거기서 ‘우리 정치의 회복력’은 시작된다.병든 정치를 치유할 힘은 우리 안에 있다. 지금, 그 첫 손길을 건넬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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