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과 영덕을 잇는 영일만대교 건설 예산 1821억 원이 정부 추경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불용 가능성’이라는 명분이지만, 지역민이 보기엔 핑계에 불과하다.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약속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영일만대교는 단지 포항만의 도로가 아니다. 동해안을 관통하는 고속도로망의 완결판이며, 군사 전략·물류 운송·관광 인프라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국가 핵심 사업이다. 이미 제2차 국가도로망 종합계획(2021)과 고속도로 건설계획(2022)에 도면으로도 명시된 정식 국책사업이다.문제는 지금이다. 정부는 ‘불용 예상’이라는 사유로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하지만 도로 노선 협의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황에서, 연내 착공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예산은 그대로 두고 행정만 보완하면 될 일이다.삭감된 예산은 민생지원금으로 전환된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결국, “국민 모두에게 줄 돈이 필요하니, 지역 숙원사업을 먼저 줄이자”는 뜻이다.지역민 입장에선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논리다. 필요한 건 보편적 지원이 아니라 책임 있는 정책 지속성이다.지역 정치권도 강력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정재(포항북), 이상휘(포항남울릉) 의원은 “이 정부는 스스로 만든 국가계획도 따르지 않는다”며 “대통령 공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라고 성명을 냈다.더 씁쓸한 건 기억이다. 2022년 대선 당시, 포항 곳곳에는 “영일만대교 적극 추진!”이란 문구의 현수막이 나붙었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선거용 구호에 불과했던 것인가. 당선 20일 만에 공약이 '적극 추진'에서 '전액 삭감'으로 돌변했다. 이걸 어떻게 신뢰하란 말인가.이번 사태는 단순한 예산 문제를 넘어 지역 소외의 구조적 단면을 드러낸다. 수도권 중심의 개발과 예산 편성 속에서 지방은 늘 뒷순위로 밀려난다. '균형발전'이라는 말은 중앙정부의 선언문에만 있을 뿐, 실천은 없다.영일만대교 건설은 단순한 포항의 욕심이 아니다. 경북 동해안권 전체의 산업·교통 인프라를 연결하는 관문이며, 해상 운송과 안보 측면에서도 국가적 가치를 지닌 사업이다. 정부가 이를 ‘불용 예상’이란 이유로 잘라낸 건, 결국 정책 판단이 아닌 정치적 의도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지방 홀대에 대한 분노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지역 균형발전은 단순히 지방 예산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약속을 지키는 문제다.정부의 손쉬운 선택이 반복될수록 지방은 점점 더 메말라간다.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부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원점 재검토를 통해 영일만대교 예산을 복원해야 한다. 이 사업은 포항만의 다리가 아니라, 국민과 맺은 신뢰의 다리다.공약은 약속이다. 그리고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이 정부라는 이름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