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받았던 문학적 스승님 손 편지를 잊을 수 없다. 편지 속 스승님 필체는 다소 악필이었다. 그러나 지난날 문학 공부 시간에 익히 대해온 그분 글씨다. 이 덕분에 편지 내용을 한 눈에 해독할 수 있었다. 편지 내용은 이러했다. 스승님의 그동안 문학적 궤적을 마무리 하는 입장에서 최근 저서 한 권을 발간했단다. 이에 대한 서평을 써 달라는 부탁이었다.
한국 문단에서 존함 석 자만 대어도 다 알 수 있는 원로 문인이자 평론가이기도 한 스승님이다. 이런 분이 필자에게 어렵다면 어려운 부탁을 해온 것은 참으로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심혈을 기울여 그분 저서를 탐독 후 평을 썼다.
서평을 쓰기 전 처음엔, “ 감히 제가 스승님 저서에 대한 평을 어찌 쓰겠습니까?” 라고 그 분 부탁을 거절할까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스승님이 보내온 편지를 몇 번이고 정독하노라니 필자에 대한 신뢰가 그 속에 다분히 배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에 생각을 바꿨다. 최선을 다하여 글을 집필하기로 마음먹었다.
편지는 이렇듯 가슴을 움직이는 힘을 지녔다고나 할까. 그러고 보니 필자가 최초로 편지를 쓴 것은 6살 때였다. 그 때는 상류층 아이들이나 유치원을 보냈다. 그런 곳은 엄두도 못 내던 집안 형편이었다. 외가에 가면 중학생이던 막내 이모가 틈틈이 한글을 가르쳐줘서 5살 때 책 한권을 막힘없이 읽고 글을 쓸 수 있었다.
한글 터득 이야기를 하노라니 6살 때 외가를 가출했던 막내 이모한테 쓴 편지가 생각난다. 이모는 중학교 3학년 때 친구가 꾀어 가출을 했다. 이모는 가출 후 서울 어느 공장에 다닌다고 외가로 편지가 왔다.
비록 6살 어린 나이였다. 그런 이모가 보고 싶었다. 하루빨리 이모가 외가에 와서 함께 숨바꼭질도 해주고 놀아 주기를 바란다며 보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필자 편지를 받은 이모는 마음을 고쳐먹고 집 나간 지 한 달여 만에 외가로 돌아와 다시 학업을 이었다.
어린 마음에도 이 때 처음으로 ‘편지’라는 통신 매개체에 대하여 경이로움을 느꼈다. 그때만 하여도 어떻게 종이에 글을 적어 이모와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지 신기하기조차 했다.
그 후 가끔 외가에 사는 이모한테 편지를 써서 엄마에게 부쳐달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필자가 쓴 편지가 어떤 경로로 이모한테 전해지느냐고 어머니한테 물었다. 그러자 어머닌 편지 겉봉에 우표를 붙이고 우체통에 넣으면 우체부에 의하여 배달된다고 설명해줬다. 이때 처음으로 우표가 지닌 효용 가치와 우체부 역할을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모한테 쓰는 편지는 초등학교 입학 할 때까지 이어졌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모랑 편지를 주고받다보니 자연 우표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 호기심으로 우표를 수집했다. 말이 수집이지 실은 이모가 보내온 편지 겉봉에서 떼어낸 우체국 직인이 찍힌 우표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그것을 모으는 재미가 쏠쏠 했다.
그 이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단골 우표 모델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훗날 안 일이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7번, 박정희 대통령은 24번 우표 모델로 나왔다. 전두환 대통령은 해외를 방문 할 때마다 기념우표를 인쇄, 우표 속에서 그 모습을 모두 47번이나 드러냈다.
아마도 이런 희소성 희박 탓에 우표 수집가들 사이에 전두환 대통령 기념우표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듯하다. 우표와 편지 이야기를 논하노라니 가수 어니언스의 ‘편지’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말없이 건네주고 / 달아난 차가운 손/ 가슴 속 울려주는/ 눈물 젖은 편지/ 하얀 종이 위에 / 곱게 써내려간/ 너의 진실 알아내곤 / 난 그만 울어버렸네’< 하략>
요즘처럼 소셜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젊은 날이었다. 편지는 먼 곳에 소식과, 글로 마음을 종이에 적어서 상대에게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이 때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치르는 비용이 우표였다.
우표는 한 시대를 담는 풍속화나 다름없다. 시대적 화석이라고나 할까. 우표를 통해 세상사를 엿볼 수 있잖은가. 일예로 2001년 독일 우정국이 긴 담뱃대를 입에 문채 웃고 있는 오드리 헵번을 모델로 삼은 일만 해도 그렇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미인의 대명사인 오드리 헵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암으로 숨졌다. 이에 유족은 그녀가 담뱃대를 입에 문 사진이 보기 안 좋다고 우표 배포와 사용을 중단시켜 달라고 요구했잖은가. 이 요청에 의하여 우정국이 우표를 거둬들여 태웠건만 5장이 세상에 남았다. 그중 1장이 언젠가 경매에서 1억 1,900 만원에 팔리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니 호롱불이 내뿜는 그을음 내음을 맡으며 밤새워 사랑하는 사람에게 정성껏 편지를 쓰던 젊은 날이 못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