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13년 10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단호하게 말했다. 당시 그는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신분으로 국가정보원 댓글 수사 특별수사팀장을 맡고 있었다. 사람보다 원칙에 충성한다는 이 말 한마디에 대중은 환호했다. 시대는 그를 강직한 검사로 기억했다. 이후 그는 고속 승진을 거듭했고,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까지 올랐다.내란 특검이 지난 6일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 과정에서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과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 등 측근들의 진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던 이들에게서 불리한 진술이 나온 것이다. 강 전 실장은 12·3 비상계엄 당일 윤 전 대통령의 손발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는 국무회의 의결 과정과 사후 문서 작성에 대해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차장도 체포영장 집행 저지 혐의와 관련한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때 결정타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왔다. 백악관 법률고문 존 딘은 초기엔 대통령을 방어했지만, 수사선상에 오르자 진술을 바꿨다. 이처럼 측근들이 위기 상황에서 등 돌리는 사례를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식적인 충성은 헌신이 아니라 이해관계에 따른 선택일 뿐이다. 권력이 유지될 때는 따라가고, 가라앉을 때면 계산이 앞선다. 이러한 충성의 필요조건은 보상과 보호다. 보상이 사라지고 보호막이 무너지면 충성도 함께 허물어진다. 변심은 인간의 약점이 아니라 권력의 한계다.권력은 외형적으로 단단해 보이지만 본질은 허약하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꽃은 열흘 동안 붉지 않다)이라고 하지 않던가. 한때 충성을 다하던 이들도 권력이 기울기 시작하면 스스로 살 길을 준비한다. 윤 전 대통령의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대로 부메랑이 됐다. 그에게 끝까지 남아 있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영원한 관계란 없다. 권력이 사라진 뒤에 남는 것은 회한과 인생무상일 뿐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