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에서 금과옥조 같은 절대 가치로 여겨진다. 그런데 근대화 기간 유입된 전문 용어가 대부분 그랬듯 외국어를 번역해 들여온 이 단어는 사실 사상이나 주의가 아닌 정치 체제를 뜻한다. 민주주의는 모두 알듯 영어로 democracy인데, 제도 발상지인 그리스의 고대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대중, 군중을 뜻하는 demos와 권력 형태나 제도를 칭하는 cracy를 합친 것으로, 대중이 권력을 갖는 '시스템'이니 민주정(民主政) 이란 용어가 정확하다.어떤 개념에 맹점이 있다면 사고 왜곡이 뒤따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쓰는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계의 한계"라고 했다. 우리가 쓰는 용어에 사고가 좌우되고, 보고 생각할 수 있는 폭은 평소 사용하는 단어를 넘어설 수 없다는 얘기다. 이처럼 목적과 수단의 혼동은 경계해야 한다. 정치 행위의 목적은 무리가 동의하는 수준에서 권력을 배분하고 운용해 각자가 최대 행복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목적을 위한 시스템은 수단일 뿐인데, 수단이 사상으로 규정될 경우 구성원들은 이를 목적으로 오인할 수 있다. 민주정은 모두가 주권을 갖고 국가를 합의 운영한다는 공화정과 함께 인류가 만든 정치 시스템 중 현재까지 최선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다수의 독재가 가능해 중우정치(衆愚政治)로 변질할 약점도 지적된다. 현인들은 이런 민주정의 약점에 부정적 견해를 자주 드러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부터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지성으로 불렸던 이들이 민주정의 위험성을 더 주목했다. 대중의 무지, 양적 계량만 가능한 다수결, 다수의 폭력성, 선동 시 취약성, 더 강력한 독재로 악화할 가능성 등을 우려했다. 이런 함정을 고려해 대부분 현대 민주국가는 민주정과 공화정을 조화한 '민주공화정'을 표방한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조 1항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란 명제로 국가 체제를 분명히 했다. 왕정 시절 대다수는 왕정이 영원할 것으로 믿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치 제도는 인류가 조화롭게 잘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며 시대에 맞춰 계속 형태를 바꿔가며 진화할 것이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