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에서 간혹 ‘다방’이라는 간판을 보면 왠지 정겹다. 그곳에 들어서면 쟁반에 찻잔을 받쳐 든 여자 종업원이 입가에 웃음을 흘리며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줄 것만 같아서다.
어디 이뿐이랴. 지난날 홀연히 곁을 떠났던 첫 사랑 머슴아다. 이곳에 가면 그 애 환영도 만날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그래 다방이라는 간판만 발견하면 나도 모르게 그 앞을 서성이곤 한다. 젊은 날 다방은 현대처럼 깔끔한 인테리어로 꾸민 쾌적한 환경의 장소가 아니었다. 
 
문만 열고 들어서면 희미한 조명 아래 손님들이 내뿜는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심지어는 퀘퀘한 냄새까지 풍겨오곤 했었다. 또한 젊은이들이 자주 찾던 음악 감상실 역시 환경은 매한가지였다. 
 
자주 단골로 드나들던 음악 감상실엔 신청곡을 틀어주는 키 크고 깡마른 장발의 DJ가 있었다. 그곳에 가면 그에게 쪽지에 곡목을 적어서 음악을 신청 하곤 하였다. 그러면 그는 벽면을 차지한 수많은 레코드판을 순식간에 뒤져서 희망 곡을 틀어주었다.
학창 시절 필자가 자주 가던 ‘금상’이라는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 고층 건물 지하에 마련된 곳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가까스로 내려가면 지척을 분간 못할만큼 매캐한 담배 연기가 눈앞을 가렸다. 그리곤 그 당시 유행했던 클래식을 비롯, 유행가가 들려오곤 하였다. 이곳을 갈 때마다 단골인 나를 기억하는 DJ였다. 그는 내가 신청을 안 해도 자리에 앉자마자 잊지 않고 애창곡인 펄시스터즈의 ‘커피 한잔’이라는 노래를 꼭 들려주었다.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 /웬일인지 오지를 않네/내 속을 태우는구려/8분이 지나고 9분이 오네/1분만 지나면 나는 가요/정말 그대를 사랑해/내 속을 태우는구려/아~그대여 왜 안 오시나/아~내 사람아/오~기다려요/오~기다려요/오~기다려요’ 지금도 이 노래를 듣노라면 왠지 가슴이 저리다. 여고 3학년 겨울 방학 무렵, 흰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던 첫사랑인 그 머슴애였다. 아무리 몇 시간을 기다려도 그 애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DJ에게 편지 한 통을 맡긴 후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부모님을 따라 외국으로 이민을 간 것이다. 차마 내 면전에서 이 말을 못 꺼냈던 그 애는 편지로 이별을 고해왔다. 
 
그 머슴애가 내 곁을 떠난 후 한동안은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리만치 무기력했다. 미련 때문인가. 그 애와 함께한 지난 시간, 추억의 잔영을 만나러 자주 이곳엘 들렸다. 그 때 마침 ‘커피 한 잔’이란 이 노래가 음악 감상실에서 흘러 나왔었다. 이 곡은 들을수록 가사가 나의 심경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하여 갈 때마다 신청을 했었다.
좀체 그곳에서 만날 수 없는 첫사랑 남자이련만, 오지 못할 것을 뻔히 잘 알면서도 시간만 나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그 곳을 향하였다. 그리곤 무턱대고 이 노래를 신청 한 후 그 애를 기다리곤 했었다. 이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의 슬픔에 한껏 함몰돼 좀처럼 헤어나질 못했다.
어느 때는 학교도 결석 한 채 교복을 입고 아침 이른 시각에 이곳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 미니스커트를 입은 종업원 아가씨가 쟁반에 따끈한 엽차와 커피에 계란 노른자를 띄워서 갖다 주곤 했었다. 그 시절 음악 감상실에서 마셨던 모닝커피 맛은 일품이었다.
요즘은 커피숍도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하곤 한다. 만남의 장소, 혹은 노트북을 갖고 가거나, 책을 들고 가 읽기도 하고 심지어 그곳에서 공부도 하고 글도 쓴다. 이로보아 현대인들에겐 이제 커피숍은 생활공간의 일부가 된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오미자차, 율무차, 쌍화차 등 국산차 파는 곳은 눈 씻고 찾아볼래야 볼 수조차 없다. 어디 이뿐인가. 너도나도 커피를 마치 숭늉처럼 마신다.
커피는 다 아다 시피 원산지가 에디오피아로 추정된다. 이와 관련된 설화로 “에디오피와의 염소 치기 칼디와 춤추는 염소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칼디라는 사람은 자기 염소들이 어떤 나무 열매를 먹은 후 밤늦게까지 잠 못 자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이 열매를 갖고 수도원장을 찾아가 이 사실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쓸데없는 이야기라며 열매를 불 속에 집어 던졌다. 이 때 열매가 불에 구워지며 향긋한 냄새가 났다. 이 열매를 갈아 물에 녹여 마신 그는 한 밤중에도 정신이 또렷한 채 잠을 못 이뤘다. 
 
그 후 이 수도원에선 철야기도 때마다 수도사들이 이 열매로 만든 음료, 즉 커피를 마시고 밤새 맑은 정신으로 정진 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언어학자인 ‘파우스투스 나이론(FaustusNairon)’이 1671년에 출판한 책 『잠들지 않는 수도원』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러한 커피가 16세기 이후, 메카로부터 카이로, 이스탄불, 다마스쿠스 등지로 퍼져나갔다. 이슬람 세계에서 특히 커피가 널리 보급된 이유는 이 문명권에서 
 
술이 금지 되어 다른 기호 음료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 해본다. 커피는 17세기 중엽이 되어서 급기야 유럽 여러 도시로 보급되었다. 커피는 이제는 전 세계인이 즐겨 마시는 기호 음료가 되기도 했다.
녹우(綠雨)가 쏟아지는 아침, 모처럼 모닝커피를 한 잔 앞에 두고 명상에 잠겨 본다. 갑자기 커피 잔 속에 학창 시절 첫사랑 그 애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애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할까? 요즘 따라 못내 그 애가 보고 싶고, 안부가 궁금한 것은 어인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