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가 ‘에코빌리지’ 입지를 공개 모집한다. 단순한 소각장이나 매립장이 아니다. 도서관, 공연장, 공원 같은 주민편익시설이 함께 들어서는 복합 인프라다. 이른바 ‘친환경 첨단 폐기물 처리 시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30년간 주민지원금과 편익시설을 포함해 총 960억 원. 혜택만 보면 신도시급 대형 프로젝트다. 하지만 정작 관건은 ‘어디에 지을 것인가’다. 수백억 원의 지원보다 한마디 ‘싫다’는 주민 여론이 더 무섭다. 혐오시설이라는 낙인은 아직도 견고하다.한국 사회에서 폐기물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가 버리는 모든 것들이 결국 누군가의 삶터 옆에 자리 잡는다는 사실은 잘 잊혀진다. 그래서 누군가의 ‘생활환경’이 다른 누군가에겐 ‘희생’이 된다.그러나 더는 피할 수 없다. 도시화, 인구 증가, 소비 확대로 폐기물 문제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기존 시설의 수명도 끝나가고 있다. 그 대안이 에코빌리지다. 단순한 처리 공간이 아니라, 에너지 순환과 자원 재생의 거점, 더 나아가 시민 공간으로 기능하는 설계다.선진국 도시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변화를 추진해 왔다. 오스트리아 빈(Vienna)의 스팔레르나우(spittelau) 소각장은 훈데르트바서의 예술 건축물로 탈바꿈했고, 시민들의 휴식처가 됐다. 폐기물 처리는 도시의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부심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문제는 ‘누가 받아들일 것인가’다. 포항시는 지역주민 동의율 70% 이상, 유치위원회 구성 등을 입지 조건으로 내걸었다. 조건은 까다롭고 절차는 복잡하다. 그러나 그것이 민주적 정당성 확보의 과정이라면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다.중요한 것은 단지 돈이 아니다. 설명회나 선진지 견학이 보여주기식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설득은 정보가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다. 폐기물 문제를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갈 공동의 숙제로 인식해야 한다.또 하나, 정치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역 내 갈등이 격화될 경우, 책임 있는 조율과 중재가 없다면 자칫 ‘반대만 남는 프로젝트’로 변질될 수 있다. 입지 유치를 원하는 지역 간에는 경쟁이 아닌 공공성과 연대의 태도가 필요하다.이 사업은 단지 소각장 하나 짓는 문제가 아니다. 포항의 도시 경쟁력, 시민 삶의 질,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환경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쓰레기 처리’는 행정의 일이지만, ‘에코빌리지’는 시민이 함께 설계해야 할 미래다.폐기물은 도시의 부끄러운 뒷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합의가 필요하다.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신뢰가 없으면 소용없다. 진짜 기반시설은 철근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져야 한다.에코빌리지가 성공하려면, 단지 건물을 짓는 것에 그쳐선 안 된다. 시설이 들어선 이후에도 지역 주민의 자율적 참여와 운영 권한이 일부라도 보장되어야 진정한 수용성과 신뢰가 확보된다.공원 하나, 도서관 한 칸이라도 주민 손으로 기획하고 꾸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곳은 행정의 프로젝트가 아닌 지역의 공간, 시민의 자산으로 자리 잡는다.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하되, 주민이 주인이 되는 방식. 이 단순한 원칙을 실현하는 데 성공한다면, 포항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도시가 아니라 자원을 ‘순환’시키는 도시, 나아가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로 기억될 것이다.우리가 남긴 흔적이 결국 어떤 공간에, 어떤 이름으로 남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책이 아닌 태도다. 혐오를 품은 자리에 존엄이 깃들 수 있다면, 그 도시는 진짜 ‘에코(Eco)’를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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