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 단순해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물음이다.“아내가 위독하다. 치료약은 근처 약국에 있지만 값이 너무 비싸다. 남편은 온갖 방법을 다해 돈을 구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약을 훔친다. 그는 도둑일까, 아니면 생명을 구한 구원자일까?”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 논쟁이 아니다. 옳고 그름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를 묻는, 깊은 성찰의 출발점이다.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는 이 상황을 ‘하인츠 딜레마’라 부르며, 도덕 판단의 발달 과정을 여섯 단계로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 판단의 기준은 주로 5단계까지 머문다. 우리의 역사적 판단 역시 이 틀 속에서 성찰해볼 수 있다.1단계는 처벌 회피, 2단계는 개인의 이익, 3단계는 사회적 기대, 4단계는 법과 질서의 준수다. 반면 5단계는 공익과 생명의 가치를 위해 법을 넘어설 수 있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즉, 4단계가 ‘법이니까 지켜야 한다’라면, 5단계는 ‘법보다 생명이 우선할 수 있다’는 판단의 전환이다.하인츠가 약을 훔친 행위를 단순한 위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생명을 살리기 위한 깊은 고민의 결과로 볼 것인지는 평가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그 선택이 생명을 위한 것이었다면, 도덕 발달 5단계에 해당한다. 콜버그는 바로 이 ‘선택의 동기’와 ‘맥락’에 주목했다.지금 대구에서 진행 중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 조례 폐지 찬반논쟁은, 우리 앞에 하나의 역사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우리는 박정희를 어떻게 기억하며, 그 기억을 사회 속에 어떻게 남길 것인가?이제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박정희의 5·16은 그 시대의 절박함 속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는가?그의 법을 넘은 결정은 긴박한 시대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1961년, 대한민국은 정치적 혼란과 경제 침체, 무너진 행정력과 국민의 불신 속에 놓여 있었다. 이승만 정권이 붕괴된 뒤 출범한 장면 정부는 기대를 채우지 못한 채 국정은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1인당 국민소득은 고작 82달러에 불과했고, 전쟁의 폐허 위에 선 한국은 세계 최빈국 수준에 머물렀다. 당시 국민에게 생존은 가장 절박한 과제였다. 수많은 이들이 절망 속에서도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으며, 그 고단한 세월의 기억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이 남아 있다.박정희는 그 위기를 ‘더 늦기 전에 구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받아들였고, 마침내 5·16을 단행했다. 이후 네 차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밀어붙인 결과, 1979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이 1,636달러에 이르렀다. 불과 18년 만에 이룬 변화였고, 많은 이들이 이를 ‘기적’이라 불렀다.박정희의 선택은 법을 넘었지만, 국민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는가. 그렇다면 그의 판단도 도덕 발달 5단계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우리는 냉정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윤리는 시선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하인츠의 행동은 약사에게는 위협이지만, 가족에게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절박한 선택으로 비친다.박정희의 5·16 역시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에게는 위법이었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절망 속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한 돌파구였다.그를 향한 시선은 극명하게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찬양과 단죄, 기념과 폐지의 이분법을 넘어설 때 비로소 성찰이 시작된다. 모든 인물과 역사는 공과를 함께 지닌다. 중요한 것은 이상화도 왜곡도 아닌, 그 속에서 질문하고 배우려는 태도다.우리는 이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 판단의 옳고 그름을 단정하기에 앞서, ‘나는 지금 누구의 입장에서 이 선택을 바라보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먼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한다.역사는 찬양도 단죄도 아닌, 질문과 사유의 공간이어야 한다. 그 질문이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역사에서 성찰을 배운다.역사를 기념한다는 것은 인물을 찬양하는 일이 아니라, 그가 남긴 질문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 다짐을 지워버린다면, 우리 역사는 소중한 질문을 잃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