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삼정지구 도시개발사업조합이 제출한 진정서를 읽어보면 납세 현장의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시공사가 실제 공사대금을 지급한 법인이 아닌 비영리 조합 명의로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면서, 이미 납부한 부가가치세 8억여원이 환급되지 않고 있다.조합은 비영리단체이기에 애초에 공사대금을 지불할 수도, 세금계산서를 발급받을 이유도 없다. 실질적 지급 주체는 조합원 차주법인인 ㈜티티씨홀딩스였다. 그러나 형식상 계약서에 조합이 기재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무서는 문제없다는 답만 반복했다. “억울하면 재판하라”는 식이다.여기서 드는 의문은 단순하다. 세금제도의 원칙은 ‘형식’인가, 아니면 ‘실질’인가. 국세기본법 제14조가 분명히 말하듯 ‘실질과세의 원칙’이 존재한다. 돈을 낸 곳이 따로 있다면 그 실질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세무당국은 교과서에 적힌 원칙조차 외면하고 있다.조합은 시공사에 세 차례나 내용증명을 보내 “실제 결제 법인으로 세금계산서를 수정 발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시공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조합원들의 땀과 돈이 걸린 문제임에도, 사업 파트너인 시공사는 책임을 회피하고 세무당국은 ‘형식대로 했다’며 뒷짐만 지고 있는 셈이다.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겹쳐 있다. 하나는 시공사의 무책임이고, 또 하나는 행정기관의 무사안일이다. 납세자 권리를 보호하고 분쟁을 조정해야 할 세무당국이 ‘법원으로 가라’는 말로 끝내는 순간, 행정은 더 이상 존재 이유를 잃는다.공무원들이 “우리는 세금만 거두면 된다”는 인식에 머물러 있다면, 세무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세무서가 있는 이유는 단순 징수만이 아니다. 억울함을 조율하고, 제도적 허점을 메워주며, 납세자가 안심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더구나 이번 사안은 금액 규모가 크다. 8억여원은 1360명의 조합원 자산이다. 개인에게는 생활 기반을 흔들 수 있는 거액이고, 조합 차원에서는 지역 개발과 공동체 운영을 위한 소중한 재원이다. 이 돈이 단순 회계 처리 오류와 행정 무책임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다.세무당국은 늘 ‘납세자 권리헌장’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납세자가 체감하는 것은 ‘세무서의 벽’이다. 법적 원칙을 방패 삼아 무조건 소송을 권하는 태도는 납세자 권리 보호가 아닌 회피다. 실질을 따지지 않는 행정은 결국 또 다른 분쟁과 불신을 낳는다.삼정지구 조합 사건은 단지 한 조합의 억울함이 아니다. 제도적 허점이 반복되면 비슷한 피해는 언제든 다시 발생한다. ‘실질과세’ 원칙이 선언적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세무당국 스스로 원칙을 적용하고 책임 있게 해석해야 한다.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의무다. 그러나 그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납세자가 억울한 피해를 입는다면, 그것은 국가의 직무유기다. 세무당국은 ‘징수 기관’이 아니라 ‘권익 보호 기관’이어야 한다. 삼정지구 조합의 진정은 바로 그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납세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한다면, 법과 제도의 신뢰는 흔들린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무행정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납세자 권익 보호’라는 말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