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부가 내놓는 경제 논리를 들으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논리로 국가채무 확대를 정당화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한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이 농사철도 아니고, 씨를 뿌릴 시기조차 아니라는 점이다.농부가 씨앗을 빌려 뿌리는 것은 내일의 풍년을 위한 투자다. 그러나 정부가 말하는 씨앗(국채 발행)은 농사를 위한 종자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배가 고픈 당장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삶아 먹는 곡식에 불과하다. 씨앗을 먹어버리면 순간은 허기를 면할 수 있지만, 내일의 수확은 사라지고 결국 가문과 후손이 굶주리게 된다. 국가 재정도 마찬가지다. 지금 정부가 빚을 내어 쓰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라기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필요와 포플리즘적인 인기를 위한 소모에 불과하다.가정을 예로 들어보자. 집안의 가장이 가계를 꾸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식들의 내일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자식들을 굶기면서도 자기 배만 채우는 부모와 다르지 않다. 가정이 무너지든, 자식이 고통을 받든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의 배만 채우겠다는 태도다. 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국민과 후손은 결국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이미 국가 채무는 1,300조 원을 넘어섰고, 금년 말이면 1,4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정부가 아무리 “괜찮다, 감당할 수 있다”고 강조해도 그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들이 짊어져야 한다. 더 큰 문제는 그 빚이 미래 세대인 청년들에게 떠넘겨진다는 사실이다. 지금 정부가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찍어내는 국채는 후손의 희망을 갉아먹는 독약과 다를 바 없다.역사는 분명한 교훈을 준다. 1907년 서상돈 선생이 주도한 국채보상운동은 “우리 세대의 빚은 우리가 갚자”는 숭고한 시민정신의 발로였다. 또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필자가 직접 제안하고 전 국민이 참여했던 금 모으기 운동과 달러 모으기 운동 역시 미래 세대를 위한 헌신이었다. 당시 국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통을 감내하면서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그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지금 필요한 것도 바로 그 정신이다. 씨앗은 농한기 자갈밭이 아닌 농번기 기름진 땅에 뿌려야 한다. 식탁에 올려 먹어버리면 내일은 없다. 국채는 미래를 열기 위해 쓰여야지, 당장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더 이상 달콤한 논리로 국민을 현혹하지 말고, 허리띠를 동여매듯 불요불급한 씀씀이를 줄이고 재정을 건전하게 운영해야 한다. 긴축과 절제가 절실하다. 국채에 의존한 단기적 소비는 경제 활력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미래를 갉아먹는 불씨가 될 수 있다.나라의 살림살이는 국민 모두의 삶과 직결된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빚을 내는 미봉책이 아니라 절제와 절약 속에서 지속 가능한 길을 찾는 진정한 책임정치다. 정부는 눈앞의 유혹을 버리고 백년지대계로 멀리 내다보아야 한다. 국민 역시 국채를 씨앗으로 미화하는 논리에 속지 말고, 미래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길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국가를 사랑하는 길은 멀리 보는 길이다. 우리는 씨앗을 먹어 치워 당장의 배를 채우는 길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 아껴 뿌리고 거두는 길을 택해야 한다. 그것이 곧 애국애민 정신으로 국민을 위하고, 후손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