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햇살이 아무리 작열한다 해도 지난여름의 뜨거웠던 햇살에 비할 수는 없다. 이제 말이 살찌는 시기 아닌가. 앞선 시간은 뒤따르는 시간에 자리를 내주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럼에도 이런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가을의 문턱에서 여름의 한나절을 보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빨간 정지신호가 계속되리라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하다. 녹색 신호로 바뀌었음에도 빨간 신호로 인식한다면 도시는, 사회는 제대로 작동할까.
시간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구분하는 것이다. 과거는 원인이 되고 미래(혹은 현재)는 결과가 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과관계는 시간과 함께한다. 이렇듯 우리가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는 중심에는 시간이 자리한다.
그런데 시간이 멈춘 듯 행동하거나 세상을 이해한다면 돈키호테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리 역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이 변화의 주된 요인은 과학기술이다.
과거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것들로 대체된다. 그리하여 대체된 과거의 것들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 윤리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동성애 등 LGBTQIA에 대한 판단이 그렇다. 이처럼 변화는 시간과 함께하며, 과학기술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지식에 사로잡혀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맞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백악기, 공룡과 포유류가 살았던 시대에 공룡들은 포유류를 먹고 살았다. 당시 포유류는 공룡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포유류는 공룡과의 경쟁에서 지게 된다. 포유류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은 양의 먹이로도 생존해야 했다. 따라서 크기는 작아져야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작은 크기 덕분에 6,500만 년 전 '대멸종'에서 포유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엇이 대멸종을 일으켰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지구에 거대한 운석이 충돌하며, 먹이사슬이 깨졌다는 것이 가장 유력한 이론이다. 이때 작은 동물들은 영향을 덜 받았는데, 적은 먹이를 먹고도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하여 포유류는 에드워드 윌슨이 말한 것처럼 '지구의 정복자'(The Social Conquest of Earth)가 되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사례는 이 밖에도 수없이 반복되었다. 이와 같이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라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를 인식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심리학에서 다음의 사례를 보자.
가령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본 관찰자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거짓말을 했을 것이라고 분명할 때조차 그가 거짓말을 한 것은 성격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 사람의 인격만 비판할 뿐 실제로는 맥락으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정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이 처한 맥락보다는 행위 당사자의 영향력을 알아보기가 훨씬 더 쉬운 모양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맥락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상호작용 관점은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이며, 이 여러 요인으로 결과가 나왔음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이나 사물에 대해 이렇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 뇌는 게으르다. 일상의 삶에서 이런 다양한 것을 분석하기에 우리 뇌는 너무도 지친다. AI에게 추론능력을 강화할수록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듯, 우리의 지능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몽테스키외도 '법의 정신'에서 "사물을 어느 정도 시야의 넓이를 가지고 본다면 재기(才氣) 같은 것은 사라지고 만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불완전하고, 유한하고, 착각하며, 따라서 어리석다. 다만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자만이 세상을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뿐이다.
한수원의 원전 보안 경비를 책임지고 있는 시큐텍㈜의 조직 구성원들도 이렇게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구성원 각자가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알고, 더 일을 잘하게 되면 원전의 보안 경비 능력이 향상될 수 있다.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에서 주인공 스토너가 죽음을 앞두고 병상에서 스스로에게 한 질문이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이 질문에 대해 작가는 인터뷰에서 스토너의 삶이 훌륭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그가 진짜 영웅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어느 정도 애정이 있었고, 그 일에 의미가 있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일상의 삶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 즉 잘 적응하려는 것만이 살아남으며, 이것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유일한 진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