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일화를 하나 말해도 될까요? 미취학연령인 손녀와 대화하는 중 ‘할머니가 너만 했을 때는’ 하는데 아이가 대뜸 받아서 ‘할머니도 나처럼 아이일 때가 있었어?’ 신기한 듯이 묻습니다. ‘그러엄’하고 웃으며 대답하지만 나도 모르게 속으로는 찔끔 눈물이 납디다. 내가 언제 이런 나이가 되었지 하는 생각에 이어 허무한 감정이 따라옵니다.
신체적으로는 생기가 넘치고 마음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던 젊은 시절에는 얼마든지 혼자서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비혼(非婚)이든 독신(獨身)이든 부르는 이름이야 어떻든 간에 결혼을 거부하고, 혼자 살 것이라는 지키지 못할 큰소리를 땅땅 쳐 보기도 했습니다. 
 
아마 거기에는 부모 세대가 살아온 모습과 같은 삶을 살기 싫다는, 즉 ‘나는 달라’라는 오만함이 마음 바탕에 깔려 있었을 겁니다. 나 자신 부모의 희생을 입어 나고 자랐으면서도 어려운 살림에 자식들을 키우려고 세상에서 전력투구하며 살아도 자식의 눈에는 달라지는 것 없는 구차한 살림이 궁상스럽기도 했습니다. 마치 박목월의 시 ‘가정’ 3연의 내용처럼.
‘아랫목에 모인 / 아홉 마리의 강아지야, / 강아지 같은 것들아 / 굴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 / 내가 왔다. / 아버지가 왔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부양하려고 ‘얼음과 눈으로 벽을 짜 올린’ 현실을 살아가는 자신을 연민하는 마음이 때로는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현관에 놓인 아홉 켤레의 신발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아버지로 하여금 어떤 시련도 마다하지 않게 하는 힘이 강아지 같은 자식들에게서 나온다니, 가족은 작은 기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을 MZ세대라 하던가요? MZ세대라고 뭉뚱그린 명칭이 적절하지 않다는 이견도 있지만, 어쨌든 X세대 이전의 기성세대와 대비되는 의미로 쓰이는 것 같더군요. 그들은 어릴 때부터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안에서 자라 군사독재를 경험했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특성이 있다는군요.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개인의 취향과 사생활을 중시해서 체면이나 예의 같은 관습적 관계보다 합리성에 중점을 두어 납득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는, 다시 말하면 윗사람의 지시라 해도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정확한 계산을 좋아한다는 점도 있군요.
사람은 시대와 사회 속에서 만들어지는 속성이 있으므로 기성세대는 기성세대가 경험한 시간이 있고, MZ세대는 또 그들이 속한 정치사회적 환경이 있기에 어느 사회건 세대 간의 충돌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인구 감소 문제도 결혼 연령의 증가와 저출산이라는 현상보다 그 뒤에 자리한 MZ세대의 특성이나 가치관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격식이나 관습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며 미래보다 현재에 더 가치를 두어 소위 ‘워라밸’을 중시하는 그들에게 아무런 메리트도 없고 오히려 연대와 책임과 희생을 요구하는 결혼과 자녀 출산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반려(伴侶)’라는 말이 있습니다. 짝을 의미하는 반(伴)과 려(侶), 두 글자를 합해서 만든 반려는 ‘짝이 되는 동무’라는 뜻이지만 보통 인생을 함께 살아가는 배우자를 지칭합니다. 나 혼자 살 것이라던 기개는 어디로 가고 나도 인생을 함께 걸어갈 반려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간과한 중요한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짝’은 당연히 바라보는 곳이 같아야 한다던 내 생각을 비웃듯 나와 내 짝은 취향도, 성향도, 입맛도, 생활패턴까지 하나도 같은 게 없더군요.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고 몸을 쓰는 취미를 선호하는 짝에 비해서 앉아서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보기를 즐기던 나 사이에 충돌이 빈번하게 생기는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런 충돌을 겪으면서 조금씩 상대를 더 알게 되고, 아이를 키우면서 공동의 관심사를 가진 동지적 우애가 생기더군요. 한참 전에 지나간 일이네요. 자식들은 다 제 둥지로 떠나고 나와 내 짝이 퇴직을 하고도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블랙커피를 입에도 대지 않던 짝이 어느 날부터 아침에 커피를 직접 갈고 드립해서 주고, 내가 들으면 돌려버리던 클래식 음악을 들으려고 앰프를 구입하더니 연극도 연주회도 곧잘 동반해줍니다. 시간이 만들어준 조화로운 우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이온 킹’이란 유명한 애니메이션이 있지요. 사자 무리의 왕인 아버지 무파사가 아들인 어린 심바를 자신의 후계자로 동물들에게 들어 보이는 유명한 첫 장면과 함께 흐르는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사바나 대평원의 일출과 코끼리부터 군대개미까지 모든 아프리카 초원의 생명이 심바의 후계자 계승을 보려고 모여드는 영화의 첫 부분에 흐르는 이 노래의 제목이 ‘서클 오브 라이프(Circle of Life) - 생명의 순환’입니다. 자연계에 살아가는 어떤 생명도 혼자서는 살아가기 어렵거니와 언젠가는 자연 속으로 다시 소멸해 가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사라져도 자신의 DNA를 이어받은 자식으로 생명의 순환은 이어집니다. 결국 나고 자라고 생육하여 번성하고 쇠하는 흥망성쇠가 생명이 순환하는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