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는 맑은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왜가리, 쇠백로는 먹이를 찾아 유유자적하는 진풍경을 연출하는 곳이 청계천이다. 여행객들은 세계 어느 나라 도심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서울에 매료되지만 어쩔 수 없이 한국관광의 대표 볼거리는 고궁이다. 우리민족의 슬픈 역사를 자랑하는 꼴이 되어 부끄럽다. 조선 500년은 치욕의 흔적인 것을--. 중국에는 수탈과 겁탈이 점철된 굴종의 세월이었고, 일본에는 외교력에 힘이 딸려 나라를 뺏겼다. 계급사회 조선의 서민들은 양반을 위한 노예생활일 뿐 역사가 없다. 우리 민족이 사람답게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자유세상이 된 것은 1948년 자유민주주의 건국이 아니던가? 서글펐던 국민들은 농지개혁으로 얻은 땅 몇 평을 가지고 자식교육에 생을 걸었고, 대통령은 전쟁 중에도 청년들을 뽑아 국비로 유학을 보냈다. 국민의 잠을 깨운 지도자, 선진제도 연구에 뜬 눈으로 밤을 새운 공직자, 지구촌을 누비며 맨주먹으로 개척한 기업인과 근로자들 때문에 한국은 산업선진국이 됐다. 그 상징이 세계가 부러워할 ‘한국제품관’이다.특히 방위산업관에서 육⸱해⸱공군의 신무기 성능과 해마다 갱신되는 무기 수출액을 보면, 한국의 국력을 새삼 실감할 것이다. 명품이 된 K9 자주포 개발에 과로로 순직한 김동수 박사, 세계가 놀란 KF-21 전투기개발은 조국을 위해 21개월간의 감옥 생활도 마다않은 재미교포 박시몽 박사, 10년간 ‘최후의 퇴근자’ 별명을 얻으며 세계최고의 선박엔진과 함정을 개발하여 조선강국을 만든 민계식 회장의 집념에 국민들은 감동한다. 1993년 김영삼정부의 첫 국빈은 필리핀 라모스대통령이다. 필리핀은 6.25때 미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장병을 보낸 우방이다. 라모스는 한국전 참전용사다. 그와 오랜 인연을 가졌던 국방장관 권영해는 퇴역한 전투기, 장갑차, 함정을 깨끗이 정비해 방문 기념으로 무상공여하자고 대통령에 건의했다. 고철로 생각하고 받은 필리핀 장병들은 함정점검에서 한국인의 진정성에 깜짝 놀란다. 교환하고 수리한 부품마다 작은 메모지에 ‘최선을 다 해 수리했음‘ ’보은의 싱징‘ ’한국전쟁에 희생한 전우를 위해‘ 등, 담당병사 이름까지 적어 끼워져 있었다. 그런 정성으로 신뢰가 쌓여 지금까지 신개발 방산무기는 필리핀이 제일먼저 구입한다. 한국의 방위산업은 1995년에 시작한 ‘불곰사업‘이 전환기다. 1990년대 초 노태우정권이 소련에 제공한 14.7억 달러의 차관을 러시아가 이어받았으나 상환할 능력이 없자, 전차, 장갑차, 훈련기, 헬기 등 다양한 무기와 기술을 대신 받았다. 그로서 한국의 무기개발은 탄력을 얻었고, 지금 국제적 경제난에도 한국은 방산무기 수출로 세수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 정책브레인의 제안을 대통령이 수용한 덕이다.한국제품관은 대부분 기업관이 차지하고 각종 신개발 혁신제품으로 채울 것이다. 미니어처 전시로도 세계최고 기술을 증명할 토목⸱건축관, 지구촌 식량문제를 고심하는 KOPIA(해외농업기술개발사업) 활동을 볼 수 있는 농업진흥관, 기술⸱기능 장인육성을 목표로 훈련하는 기능올림픽관, 그 외 창업관, 로봇관, AI관, 국민예절관, 명예의 전당 등 국책사업 18관 또한 국제적 관심으로 한국여행의 필수볼거리가 된다. 1983년에 ‘코끼리밥솥’ 사건이 있었다. 여행자유화로 한국인의 일본여행에서 전기밥솥은 뺄 수 없는 기념품이 되자 부산항을 통한 주부들의 사재기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전두환 대통령은 “전기밥솥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느냐”는 촉구로 기업들은 한국고유의 가마솥 밥맛을 재현한 ‘압력전기밥솥’을 개발했다. 1990년대부터 일본을 앞섰고 2000년대부터는 전 세계 주부들의 관심 1위 품목이 됐다. 한국여행 기념은 작은 뱃지 정도로 만족할 때가 아니다. 한국은 이미 면세상품 구매와 다양한 먹거리로 본전 뽑는 여행지로 각인됐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자” ‘한국제품관’은 청년들의 개척정신을 깨우고. 산업재도약의 꿈과 수출증대를 실현할 한국상징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