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 나는 오래된 울림을 만나러 경주국립박물관으로 향했다. 빗물에 젖은 돌길을 밟으며 걸어가는 동안, 이미 내 마음은 신라 천년의 세월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오늘은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위해 제작한 성덕대왕신종, 우리가 흔히 에밀레종이라 부르는 그 종의 타음조사가 있는 날이었다. 신라 경덕왕의 아들 혜공왕 때인 서기 771년에 완성된 이 종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또 가장 큰 종이다. 높이 3.3미터, 무게 19.2톤. 그러나 그 장엄한 수치는 종소리를 직접 듣는 순간,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이 종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라, 시대와 사람, 나라와 하늘의 염원이 응결된 살아 있는 혼이기 때문이다.22년 만에 다시 열리는 이번 타종식에는 학계, 문화계, 예술계의 인사 771명이 초청되었다. 그 숫자는 종이 만들어진 해 771년에 맞춘 상징이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내가 그 자리 한켠에 있었다는 사실은, 비록 작은 인연이지만 내 삶의 소중한 흔적이 될 것이 분명했다.전통무용가 이애주가 이 종소리에 맞춘 춤을 만든 적이 있다. 춤 이름은 후천개벽무(後天開闢舞)로 성덕대왕신종 타종행사 때마다 종에 대한 의미를 담은 춤을 추는 공연을 열었는데 그의 사후 제자들이 전수받아 공연을 펼쳤다.보신각 종지기와 진천사 종 만드는 공장 대표가 종 앞에 서자, 세상은 고요해졌다. 빗소리마저 잠시 멎어주었다. 모두의 숨결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첫 타종이 울려 퍼졌다.
 
“어~ㅁ~마~” 에밀레~~~ 그 순간, 전설 속 아이의 울음소리가 내 귓가에 생생하게 번져왔다. 천년 전, 종을 주조하기 위해 어린아이의 희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설화일지도 모른다. 불교에서 살생을 금지하는데 있을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종소리가 내 마음에 닿는 순간, 애처로운 울부짖음이 땅과 하늘을 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스며드는 듯했다. 종소리 속에는 한 아이의 애잔한 울음뿐만 아니라, 나라의 안녕을 바라는 간절한 기도, 자손의 번영을 향한 부모의 마음, 백성의 삶을 감싸던 시대의 혼이 함께 깃들어 있었다.총 12번의 타종이 이어졌다. 종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물결처럼 번져 나가 가슴 속 깊은 곳을 흔들고, 잊었던 감정들을 차례로 깨워냈다. 종의 몸통에 새겨진 글귀, 신라인은 금과옥을 멀리했고 문학과 예술을 사랑했다는 ‘덕업일신(德業日新)’처럼 날마다 새롭게 한다는 그 다짐처럼, 종소리는 매번의 울림마다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되묻고 있었다.
 
종은 단순히 금속이 아니었다. 그것은 백성들의 염원, 장인의 땀방울, 왕의 기도, 나라의 꿈이 한데 모여 빚어낸 시간의 그릇이었다. 19톤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것은 바로 그 안에 담긴 천년의 혼이었다.
 
울림은 땅을 흔들었고, 공기를 가르며 멀리 퍼져나갔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세상의 소리가 모두 멎은 듯 고요했지만, 내 안에서는 새로운 파문이 일렁이고 있었다. 애잔하면서도 숭고한, 슬프면서도 장엄한 그 울림은, 내가 지금 이곳에 있다는 사실조차 잠시 잊게 했다.그날의 신령스런 분위기가 한층 신비스럽다. 그날의 울림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해진 기도였고, 후손들에게 건네는 축복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종소리는 내 마음속에서 계속 메아리쳤다. 세상을 깨우는 듯한 그 장엄한 울림은, 나에게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선조들의 혼이 깃든 그 소리는 오늘의 나를 일깨웠고, 내일을 살아갈 나에게 길을 비춰주었다.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날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어~ㅁ마~” 애절하면서도 숭고한 그 울림은 내 가슴 속에서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