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런닝족’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모여서 뛰는 운동이 트렌드라고 하더군요. 트렌드를 따라가지는 못해도 작년 11월부터 서너달, 아침 일찍 나가서 한 시간 가량 걷는 부지런을 떨어봤습니다.    해 뜨기 전에 나가서 걷기 시작해서 이윽고 해가 떠오르면 늘 봐오던 심상한 아침이 아닌 다른 세상의 아침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해가 뜨기 전 동쪽 하늘의 붉은 노을이 저녁 노을보다 더 장엄한 아침도 있었고, 새벽에 살짝 내린 비로 아직 공중에 습기가 걷히지 않았던 어떤 날은 떠오르는 햇살이 쌍무지개를 선명하게 그려놓은 하늘도 보았습니다.    무지개는 오래 머물지 않고 금방 사라져버려 만일 그 시간에 내가 아직 침대에 있었더라면 절대로 볼 수 없을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해 놓고 걷던 코스가 있지는 않았지만 소현천변을 걷는 길이 제일 많이 다닌 경로였습니다. 집을 나설 때는 아직 어둠이 덜 걷혀 어둑신하지만 걷다 보면 점점 밝아오는 논길을 한참 걷다가 천변을 따라 난 길로 접어들어 거기서부터는 소현천을 따라 난 둑길을 걷습니다.    하천 정비가 그다지 많이 안 되어 오히려 자연스러운 맛이 매력적인 천변 풍경과 그 풍경에 꼭 어울리는 수많은 흰뺨검둥오리, 하얀 백로, 젠틀한 신사같은 왜가리를 벗삼아 천천히 걷다 보면 나지막한 야산 위로 해가 솟습니다.    그러면 냇물에서 물안개가 피어 올라 주변을 감싸고 손대지 않고 저절로 자란 잡풀들이 어울린 사이로 오리가 헤엄치고 백로와 왜가리는 물고기를 낚아챌 자세로 서 있는 풍경화 한 점이 그려집니다. 어느날 아침에 그 새들과 다른 새 한 마리가 수면 위로 솟은 돌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멀리서도 보이는 윤기 흐르는 코발트빛 깃털이 너무 아름다운 물총새였습니다.    세상에 이런 행운이!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물총새는 원래 우리나라의 여름 철새인데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오르면서 아예 텃새로 눌러 앉은 종이 있다더군요. 아마 인적이 드물고 사람 손을 별로 타지 않은 장소이니 귀한 물총새가 손님으로 찾아왔겠지요? 파란 물총새만큼 귀한 새 이야기를 하나 더 해도 될까요? 동남산 아래에 자리한 경북천년숲은 아름다운 숲으로 입소문을 타며 찾는 사람이 점점 불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정원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메타세콰이어 숲과 거기 흐르는 개천에 놓인 외나무다리는 예쁜 포토존으로 유명해서 거기서 사진을 찍으려고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인기 있는 장소입니다. 천년숲으로 개방되기 전에 그곳은 경북 산림환경연구원에 부속된 묘포장으로 연구용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긴 하지만 지금만큼 공들여 꾸민 훌륭한 정원은 아니었지요.    하지만 고즈넉한 연못도 하나 있고 연못가에 찾는 사람 없는 낡은 정자가 있어 자연 속 힐링이 필요할 때면 찾아가 산책도 하고 연못가 정자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더구나 봄이면 연못 위로 늘어진 버드나무 사이로 샛노란 새 두세 마리가 우거진 가지 사이로 서로 희롱하며 노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웠습니다. 이름 모르던 샛노란 그 새가 꾀꼬리인 걸 알고 나니 고등학교 때 국어책에 실린 우리 옛 노래 ‘황조가’와 황조가에 얽힌 유리왕의 사랑이야기를 떠올리며 더 정겹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그곳은 버드나무 정원이라 이름 붙이고 연못 주변으로는 산책하기 좋도록 나무 데크도 놓아서 깔끔하게 정원이 조성되었다기에 지난봄에 행여나 꾀꼬리가 있을까하는 기대를 안고 찾았습니다.    전에는 우거진 나무가지들 안쪽이 컴컴하도록 짙었던 버드나무들이 밝은 햇살과 어울리게 간벌하고 적당히 다듬어서 마치 단정하게 자른 여학생의 단발같이 깔끔한 사이로 쉼 없이 상춘객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꾀꼬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꾀꼬리가 날아와 짝을 지어 사랑하고 산란하여 새끼를 기를 수 있는 그윽하고 안전한 숲이 아니니 다른 의지처를 찾아 떠났겠지요. 가슴 한쪽이 텅 빈 듯 했습니다. 과거 자연이 있는 모습 그대로였을 때는 물총새도, 황금빛 꾀꼬리도 지금만큼 보기 어렵지는 않았겠지요. 환경 정비나 환경 조성같이 인간이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하게 자연을 즐기고 이왕이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손을 대는 것이 꼭 나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연 환경을 다스린다는 것은 자연 환경을 인간에 맞추어 변화 혹은 개조시킬 수밖에 없는 일이니, 그 환경에 안전하게 보호받고 기대어 살던 야생의 동물들은 이후로 살 곳을 잃고 내몰리게 됩니다. 물총새 한 마리에 호들갑을 떤다고 볼 수 있겠지만 보호종으로 분류되도록 그 개체수가 줄고, 안전한 서식 장소가 무방비로 노출되어 위협을 느낀 꾀꼬리가 떠나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울 뿐입니다.    인간이 자연을 좀 더 편하게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새롭게 공간을 정비하고 조성하는 동안 그 공간은 더 이상 인간과 야생의 동물이 더불어 공존하기는 어렵다는 엄연한 사실에 살 터전을 점점 잃어가는 야생 동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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