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한 발짝만 나서도 불경기를 실감한다. 동네 상가를 살펴보면 한군데 건너씩 유리창에 ‘임대’라는 글자가 크게 써 붙어있는 게 눈에 띈다. 요즘 마트를 들려도 지갑이 선뜻 열리지 않는다. 꼭 필요한 생필품만 사게 됨은 물론, 배추 한 포기 살 때도 딴 곳과 가격을 비교하며 구입한다. 이런 내핍 생활은 지난날 구제 금융 사태도 겪어온 터이다. 어쩌면 그 시절보다 더 물가도 오르고 돈이 지닌 가치도 하락했다. 자연 이런 형국이다 보니 서민들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살 수 밖에 없다. 사실 자본주의 국가에서 돈이면 안되는 게 없잖은가. 오죽하면 돈은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라고까지 할까. 지난 3여 년 간 코로나19 창궐로 힘들어진 나라 경제였다. 이제 코로나19가 수그러들자 그동안 경제 파국이 비로소 마악 기지개를 켜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런 현상도 잠시, 돌연 123계엄이 선포 되어 경제가 다시금 악화 됐다. 안 그래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정세가 불안하고 미국의 높은 관세로 국가 경제가 걷잡을 수없이 추락한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날 1960년대 만 하여도 너나없이 가난한 살림이었다. 그래 빈부 양극화가 별반 없었다. 그 땐 조국 근대화란 기치가 처음으로 울린 시절이어서 인가. 요즘처럼 힘든 줄도 모르고 지낸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경제 개발과 공업화가 본격 가동되면서 국민들 의식 속에도 가난을 떨치고 ‘잘 살아 보자’라는 의식이 공고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당시엔 사람 사는 냄새가 났었다. 나보다도 먼저 이웃을 생각하고 타인이 어려움을 겪으면 소매를 걷고 나서서 마치 내일처럼 도와주던 그런 따뜻한 인정이 있었다. 요즘은 어떤가. ‘나만 잘살면 된다.’ 라는 이기심이 팽배한 세태다. 더구나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열차를 탄 후 그들 삶이 위협 받고 있다. 필자부터 노후를 미처 제대로 준비 못한 게 사실이다. 젊어서는 아이들 셋 키우느라 허덕이다보니 노년에 대해선 무방비 상태였다. 어찌 이런 일이 필자에만 국한 되랴. 거리에 나서면 지난 여름 폭염에도 굴하지 않고 손수레를 끌고 점포 앞을 기웃거리며 폐지를 줍는 노인들을 목격하곤 한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한다’ 라고 하지만 이런 노인들을 대할 때마다 왠지 마음이 편치 않다. 2014년 기초연금 도입 이후, 노인 빈곤 개선 효과가 첫해엔 5.2%에서 지난 2018년 13.9%로 늘어나긴 했다는 언론 통계가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살펴보면 노인 복지엔 매우 인색하다 못해 빈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독일을 비롯해 스웨덴 등 유럽 국가의 경우 노인 소득에서 공적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이 나라들은 이미 지난 2000년 대 초반에 80- 9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요즘 100세 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노인 연령 기준도 1981년에 제정된 노인복지법에서 정한 65세에서 이젠 70 세로 상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노인들의 나이만 상향 할게 아니다. 의학 발전으로 예전과 달리 노인 수명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이에 따른 사회적 복지도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생을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그 기준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우선적으로 노후에 먹고 살 걱정이 없어야 한다. 노년의 빈곤만큼 비참한 게 어디 있으랴. 노년의 빈한한 삶을 논하노라니 고(故) 한운사 작가가 작사했다는 ‘잘살아보세’라는 노래가 불현 듯 떠오른다.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잘 살아 보세(잘 살아 보세)/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우리도 한번 잘 살아 보세)/금수나 강산 어여쁜 나라 한마음으로 가꿔가며/알뜰한 살림 재미도 절로 부귀영화 우리 것이다./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하략>’ 이 노래 가사처럼 잘살아 보기 위하여 고령층들은 오늘도 노구를 힘겹게 이끌고 온갖 궂은 일도 마다않고 경제 활동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일자리의 질이 낮아서인지 저 임금이다. 이는 우리나라 고령층들의 빈곤이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노인들 경제 활동이 OECD회원 국가 평균 16.3%보다 2.4배나 그 비율이 높다는 통계에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초 고령 사회로 치닫는 우리나라다. 잘사는 나라가 되려면 무엇보다 사회적으로 노인들의 복지가 보장돼서 삶이 윤택해야 할 것이다. 지난 시절 사회주역으로서 뼈 빠지게 일만 해온 노인들 아닌가. 그들도 이젠 남은 생을 장밋빛으로 꾸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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