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9일, 한글날. 단순한 문자의 기념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를 틔운 날이다.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됐을까. 헌법이나 제도 이전에 묻는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며, 우리의 삶을 기록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었는가?” 이 질문 앞에 떠오르는 이름, 세종대왕이다.세종대왕은 1443년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1446년 반포했다. 그로써 언어는 권력이 아닌 권리가 되었고, 표현의 자유는 마침내 열렸다.글자는 곧 권력이었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 조선 사회에서 문자는 철저히 지배층의 전유물이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한자 체계는, 백성들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과도 같았다. 글을 모르면, 권리를 주장할 수도 없고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다. 침묵을 강요당한 시대, 세종대왕은 그 벽을 무너뜨리기로 결심했다.“백성이 말하고자 하나, 글로 담지 못한다.” 세종대왕은 이 절박한 현실 앞에서 결단했다. 백성의 소리를 담을 문자,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한 것이다.훈민정음 창제는 단순한 ‘글자 만들기’가 아니었다. 말과 글은 생각을 가능케 하고, 생각은 권리를 자각하게 하며, 권리의 인식은 자유를 낳는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는, 백성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진정한 통치였고, 참된 정치였다.오늘날 우리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정치 참여의 자유를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그 자유의 뿌리는 15세기, ‘훈민정음’이라는 언어 민주화에서 움텄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는 단지 문화유산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씨앗이었다.훈민정음 반포 후, 백성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 억울함도, 사랑도, 희망도 말이 아닌 글로 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글은 민의(民意)의 도구였다. 한글은 꺼지지 않는 민족의 숨결이었다. 일제 탄압 속에서도 독립선언문이 되었고, 해방 후에는 헌법과 민주화의 언어가 되었다. 국민은 한글로 자신을 깨닫고, 한글로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세종대왕은 단지 글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백성에게 생각하고 말할 권리, 곧 ‘주권의 언어’를 선물했다. 우리가 오늘 자유롭게 말하고 투표할 수 있는 힘은, 훈민정음 창제 정신에서 비롯되었다.자유민주주의는 단지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생각하고, 말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 삶의 방식이다. 세종대왕의 훈민정음은 그 믿음을 문자로 빚은 정치적 혁신이며, 말할 수 있는 권리에서 비롯된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다.한글의 위대함은 세계가 인정했다. 1990년 유네스코는 세종대왕의 정신을 기려 ‘세종 문해상’을 제정하고, 매년 전 세계 문해권 확대에 기여한 개인과 단체에 시상하고 있다. 이는 한글이 한국을 넘어 인류 보편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한 문자임을 보여준다. 영국 옥스퍼드대는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문자로 평가했다.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은 인류의 언어 해방을 상징하게 되었다.이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한글은 한민족의 역사와 혼이 살아 숨 쉬는 문화유산이다. 그 안에는 고난과 시련, 그리고 희망과 기쁨의 시간이 함께 새겨져 있다.말은 바람처럼 스쳐가지만 흔적은 남는다. 말은 한순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바꾸는 울림이 된다. 정치인의 언어는 더욱 그러하다. 사람을 살릴 수도, 상처 줄 수도 있다.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글자를 만든 것은, 말의 힘이 곧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믿음에서 비롯되었다. 정치인의 한마디에도, 사람을 품는 정신이 깃들어야 하는 이유다.정치인의 말은 역사다. 말은 글이 되고, 글은 다시 말이 된다. 그러나 오늘 정치의 언어는 조롱과 혐오, 분열과 증오로 가득하다. 막말은 듣는 이를 병들게 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좀먹는다. 정치는 갈등을 조정하는 품격의 예술이다. 정치인은 소통과 희망, 화해의 언어를 써야 한다. 하고 싶은 말보다 해야 할 말을, 말의 무게만큼 그 ‘때’를 알아야 한다. 말을 다듬는 것, 그것이 정치인의 성찰이다.그렇기에 위대한 정치인의 말은 시대를 넘어 기록된다.세종대왕은 군주(君主)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오늘날 자유민주주의의 정신에 닿아 있다. 그는 백성을 다스리기보다, 생각하게 했고, 말하게 했고, 기록하게 했다. 그 철학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설 수 있었다.한글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생각을 바꾸고 공동체를 잇는 정신의 언어다. 세종대왕이 보여준 언어의 품격처럼, 정치인의 말도 공동체의 정신과 품격을 담아야 한다.지금, 정치인의 말에는 세종대왕의 철학이 담겨 있는가. 바로 그 질문이, 우리가 오늘 되새겨야 할 한글날의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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