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며칠 전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젊은 친구들의 대화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들려와서 들었을 뿐이니 간섭쟁이라는 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A : 어릴 때 이상하게 명절만 되면 우리집에는 싸움이 났어. B : 왜? A : 몰라. 나도 어렸으니까. 제사 지내고 둘러앉아서 밥 먹다가 술도 마시거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점점 목소리가 커져. 어떤 해에는 삼촌 둘이서 치고 박고 하다가 아빠가 뜯어 말렸는데, 큰삼촌은 바로 집에 간다면서 자기 식구들 데리고 갔어. 사촌들하고 놀고 있었는데 괜히 우리끼리도 어색한 거 있지. 듣다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났습니다. 이 젊은이들의 대화가 아니더라도 명절이면 저 비슷한 일이 우리집에도 일어났거든요. 시댁은 종손집이어서 설이나 추석에는 인사 오는 친척들이 많았습니다.    다들 같은 상에서 다과나 약주를 들다가도 서로 관점이 다른 화제가 나오면 한치 양보 없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던 두 어른이 있었습니다. 목청이 점점 높아지면 한 자리에 앉은 다른 사람들은 그 토론이 끝나길 묵묵히 기다리고, 부엌까지 들리던 맞고함소리에 안절부절못하던 안식구들 마음이 무색하게 종중일로 화제가 바뀌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진지하고 사이좋게 생각을 모으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한발도 물러서지 않게 단호하게 다투던 그 어른들도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우리 세대에는 명절에 문안하던 풍속조차 사라졌습니다. 명절이면 함께 하는 가족의 범위가 평소보다 넓어져 세대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세대별 가치관이나 생활 패턴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조부모 세대, 부모 세대, 자녀 세대가 주고받는 대화의 주도권은 주로 어른이 가지고 아랫사람은 공손하게 듣는 것이 보편적 모습이거니와 세대 간의 이야깃거리나 관심사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날은 세대 간에 관심사는 물론이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크게 다릅니다. 윗세대가 젊은이에게는 취업, 결혼, 출산 등 인생살이의 때에 따른 대소사가 관심사라면 아랫세대에게 그런 것은 지극히 사적인 것으로 비록 손위어른이라도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생활 간섭이 되고,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이런 농담도 생길까요? 명절 잔소리 메뉴로 ‘학교 성적 묻기 0만원, 취업‧결혼‧출산은 각각 00만원, 이 항목들을 묶어서 세트로 물으면 할인해서 00만원’이라고 정해서 어른들 입에서 그런 대화가 나올 성하면 메뉴판을 보이라는 우스개를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명절이면 차례를 지낸 후 시절에 맞는 민속놀이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추석에는 날씨도 선선해서 바깥에서 하는 강강술래, 씨름, 윷놀이, 투호던지기를 동네 단위로 모여서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산업사회가 되면서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무너지다 보니 공동으로 모여서 즐기는 놀이는 사라져 갑니다.    가족 단위의 명절이 되면서 한때 가족끼리 화투놀이를 즐기는 경우도 꽤 많았습니다. 시부모와 한자리에서 고스톱을 즐기던 며느리가 언감생심 평소에는 입 밖에 낼 엄두도 못 내던 말을 시부모에게 던지며 같이 깔깔거리는 동안 명절 스트레스를 화투짝처럼 내팽겨쳤다더군요. 우리집도 어머니가 계시니 명절이면 어머니를 뵈러 오는 자녀들, 평소 자주 못보는 할머니를 찾는 손자손녀들로 제법 떠들썩합니다. 그런데 이번 추석은 재미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손녀가 ‘케이 팝 데몬 헌터스, 소위 케데헌 싱어롱’을 TV로 틀어달라고 하더니 거기 나오는 애니메이션의 노래를 같이 부르고 율동도 곁들였습니다.    처음에 TV를 켠 것은 아이들인데 노래가 나오니 옆에 앉은 어른들도 따라 박수도 치고 떼창을 하게 되더군요. 케데헌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연로한 어머니도 꼬마들의 노래와 율동을 재롱삼아 보고 웃으며 박수도 치고 하느라 한동안 시끌벅적했습니다. K-Pop의 영향이 우리집에도 미쳤습니다. 10여 년 전의 그런 풍경도 이제는 지나간 모습입니다. 지금은 젊은이들은 명절 전에 미리 계획을 잡아서 여행을 떠나고 귀향을 한 자식들도 귀경길 정체가 걱정이 되어서 일찌감치 서둘러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들 떠나고 난 뒷정리가 버거워서 늙은 부모는 ‘올 때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갑다’는 우스개를 중얼거립니다.    500년 전의 조선과 오늘날의 한국은 둘 사이의 시간적 갭이 큰 만큼 삶의 모습도 많이 다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1년, 2년이 모여서 500년으로 쌓이듯이 삶의 모습도 작은 변화가 누적되면 풍속의 변화가 되어 명절 풍경을 바꿉니다. 시간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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