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터키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고 있다. 이스탄불의 푸른 모스크, 카파도키아의 기묘한 바위 언덕, 안탈리아의 푸른 바람까지—이 나라는 마치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서 두 얼굴로 살아가는 듯하다.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며,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다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다리는 단순히 대륙을 잇는 다리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현실의 간극을 잇는 다리처럼 보였다.터키는 한때 중동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였다. 그러나 오늘의 터키는 그때와 다르다. 거리의 물가는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커피 한 잔, 빵 한 조각에도 원화로 계산해보면 고개가 절로 갸웃해진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리라화가 너무 떨어졌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말 속에는 통제된 언론이 말하지 못하는 절망이 숨어 있었다.에르도안 대통령의 장기집권 아래, 터키의 경제는 무너지고 물가는 치솟았다. 정권은 여전히 ‘국민의 선택’을 말하지만, 시민들은 점점 ‘선택의 여지’를 잃어가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경제의 균형과 신뢰라는 사실을, 나는 이 여행지에서 눈으로 보고 있다.우리나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자랑하지만, 요즘 그 토대가 흔들리는 듯하다. 정치가 감정의 전쟁이 되고, 언론은 편을 갈라 싸운다. 한쪽의 진실만 들리는 사회, 그것은 터키가 걸어온 길의 시작점이기도 했다.터키의 리라화가 무너진 것은 단순히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균형이 무너졌을 때, 국민이 치러야 하는 대가였다. 지도자가 권력을 쥐고, 비판이 사라지고, 다른 목소리가 막히면 국민은 결국 지갑으로, 삶으로, 그리고 자유의 침묵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나는 오늘, 비싼 커피값 앞에서 문득 우리나라를 떠올렸다. 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매일 깨어 있는 시민의 감시와 참여가 있을 때만 유지된다. 터키의 거리에서 느낀 비싼 물가는, 어쩌면 자유의 값이었을지도 모른다.우리 대한민국이 그 길을 따라가지 않기를, 그리고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지켜야 할 가치임을 잊지 않기를, 이 낯선 도시의 바람 속에서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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