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가 고령화사회로 진입하면서 노인복지관과 요양원이라는 용어가 일반화 된데 이어 어르신유치원이라는 용어까지 생겨나 노인문제는 사회복지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노인문제는 고금을 막론하고 복지에서 정치의 영역으로 확대되어 왔다. 곧 통치의 문제인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역대왕들마다 사회적약자로 대변되는 노인과 환과고독질(鰥寡孤獨疾)의 백성을 구휼하는데 최선을 다한 것으로 적시돼 있다.
신라 3대 유리왕은 지방을 순행하다 한 노파가 주리고 얼어 죽을 지경에 처한 것을 보고 이는 백성을 돌보지 못한 자신의 죄라 하면서 옷을 벗어 덮어주고 음식을 대접했다고 나온다. 또 신하에게 명하여 곳곳의 홀아비(鰥) 홀어미(寡) 고아(孤) 자식이 없는 늙은이(獨) 병들어 자활할 수 없는 자(疾)를 찾아 부양토록 했다.
 
선덕여왕은 즉위 하자마자 환과고독의 백성을 찾아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이후 성덕 흥덕왕때도 주군을 순무하며 노인으로서 병든 자와 환과고독의 백성을 찾아 곡식과 포를 하사하는 등 외롭고 의지할데 없는 백성의 구제에 왕들은 최선을 다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같은 환과고독질의 사회적약자를 돌보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당연히 군주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이 아닌 관료들만의 경로우대 제도가 있었다.첫째 노인에 대해 직위를 한등급 올려주는 노인가자(加資)제도다. 80세이상의 노인에 대해 벼슬의 품계를 한등급 올려주는 것으로 통상 3품인 통정대부에서 시행되고 있다. 가령 종4품의 벼슬을 가진 자가 팔순이 되면 3품인 통정대부로 승격시키고 통정대부인자가 팔순이 되면 2품인 가선대부로 승격시키는 것이다.
두번째로는 사후에 수여되는 증직(贈職)제도로 통상 품계앞에 증을 부여한다. 본인의 벼슬이 3품이면 아비는 4품이 되고 조부는 5품이 되며 부인은 남편의 지위를 따르는 제도다.
세번째는 노직(老職))을 들 수 있다. 노직은 실직과 대비되는 오늘날의 명예직이라 할 수 있다. 품계상 명예직이라고는 하나 실제로 살아 생전에 벼슬을 받으면 노직의 품계를 승계하니 허직의 품계로 치부할 수 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실례로 회재 가문의 경우 이전인의 증손인 이홍우는 76세에 곡식을 납부하고 노직으로 통정대부를 받은 상태에서 팔순에 다시 노인가자를 통해 2품인 가선대부로 봉해졌다. 또 회재의 증손 이굉은 이준의 아들로 곡식을 납부하고 31세에 출사해 장기훈도를 맡는다.
이후 군수품 출납업무 관청인 군자감에 근무하면서 받은 벼슬을 보면 봉직랑 수 군자감첨정으로 발령받는다. 봉직랑은 종5품의 품계이지만 종4품의 첨정으로 발령받으면서 수(守)라고 한 것이다. 이후 품계는 부친인 이준의 대가(代加)로 종4품인 조산대부에 올랐다가 팔순에 이르러 노인가자로 정3품인 통정대부가 된 인물이다.
이처럼 반상의 구별이 엄격했던 사회에서 경로우대는 비록 양반들만의 복지제도였지만 노인문제의 본질을 간과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오늘날 노인을 홀대했다가는 선거에서 필패다.
노인 인구의 증가로 세력이 커졌다는 것만이 아니라 노인에 대한 문제는 곧 인간의 본성인 인의(仁義)와 닿아 있기 때문이다. 맹자는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음으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들며 이러한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또 의(義)란 사람답지 못한 것에 저항하고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며 인의를 실현하는 것이 왕도라고 했다.
오늘날의 일부 정치지도자들이 무심코 내밷는 노인폄훼발언에 이어 노인의 참정권제한 같은 발상은 맹자의 시각으로 보면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버젓이 지도자 행세를 하고 있음을 보면 우리들이 오히려 의(義)를 실천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