千層隱佇千年寺천층은저천년사 천층 위에 주춤하게 서 있는 천 년 묵은 절瑞氣祥雲石經生서기상운석경생 맑은 정기 흰 구름 돌길에 솟아나네.淸磬響沈星月白청경향심성월백 풍경소리 꺼져가고 달빛은 밝은데滿山楓葉鬧秋聲만산풍엽료추성 온 산에 단풍 들어 가을 소리 그득하다.- 이매창, 登天層菴(등천층암) 사물을 표현하여 그리는 것을 ‘그림’이라 한다. 절과 구름, 풍경소리와 단풍이 어우러진 장면에서 ‘그림’은 ‘그리움’으로 변한다. ‘그리움’은 결핍과 부재가 동반될 때, 언어로 붙잡을 수 없는 실재와 마주할 때, 나타나는 침묵이다. 몸으로 그리는 ‘그리움’은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저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삶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는 ‘신비한 것’들이지만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매창은 이제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했다. 침묵 속에 “주춤하게 서 있는 천년 묵은 절” 천층암. 천층암에 선 매창이 노래한 풍경 속 ‘그리움’은 더 이상 눈물과 한숨이 어우러진 애절함으로 머물지 않는다. 해탈 경지에 도달해서일까? 유희경을 그리워하던 매창은 천층암에서 수양하며 참선에 들어간다. 몸이 견디는 침묵은 고독을 체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움’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인간이 사물과 세계를 이해하려는 방식으로 작동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붙잡으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매창은 이 지점에서 ‘그리움’을 말한다. 그것은 비워짐으로 드러나는 흔적, 언어가 포착하지 못한 여백에 대한 힘이다. 말과 침묵 사이에 있는 ‘그리움’은 홀로 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모든 관계에서 벗어나 순수한 나로 객관화시킬 때 드러난다. 언어 경계 너머에 있는 세계는 결국 침묵으로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층암은 “천년 묵은 절”로 침묵을 상징하고 있다. 표현하려 하지만 끝내 표현할 수 없는 자리에서 존재론적 ‘그리움’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움’은 대상을 찾는 욕망을 넘어 존재 자체와 조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상실과 결핍에서 비롯되지만, 그것을 단순히 고통으로만 경험하지 않는다. 고독을 견디는 시간 속에서 내면은 오히려 회복과 성장하는 길을 찾는다. 매창이 침묵하는 것은 억눌림이 아니라 자기 성찰과 재구성 과정이다. ‘그리움’은 내적 결핍을 치유하는 힘으로 전환되며, 고독 속에서 새로운 의미가 피어나고 있다. 또한 ‘그리움’은 집단 경험과 문화 기억 속에 자리한다. 옛사람들이 산과 절에서 수행하며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고독을 체험한 것은 결국 다시 공동체와 세계에 연결되기 위한 의례적 통과 과정이었다. 매창이 천층암에 선 고독은 개인 체험을 넘어 보편적으로 공유해 온 수행 여정과 맞닿는다. ‘그리움’은 더 이상 애달픔이나 눈물이 아니다. 그것은 침묵 속에서 울려 퍼지는 천지를 진동시키는 울림이며, 언어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신비와 마주한 체험이다. 매창이 본 것은 “맑은 정기 흰 구름 돌길에 솟아나”듯 단풍 든 가을 산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너머에 드리워진 실상, 인간이 홀로 설 수 있는 가장 깊은 자리였다. ‘그리움’은 언어를 넘어선 침묵으로, 그 침묵이야말로 삶을 울리는 가장 큰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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