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엔 가을을 기다렸다. 이 계절만 돌아오면 배낭을 메고 발길 닿는 대로 산사를 찾곤 했었다. 그곳에 가면 주변 자연이 지닌 아름다운 풍광과 산새들 울음소리, 숲 속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이 너무 좋았다.    그곳을 찾을 때마다 산자수명한 자연 속에 심신이 풍덩 빠지는 느낌이었다. 이 때 속세에 찌든 비루한 심신이 헹궈지는 기분도 들었다. 절 경내에 들어서면 은은한 향불 냄새와 자애로운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곤 했었다. 그리곤 행복과 강건함을 마음속으로 간절히 소원 하였다. 이제는 나이 탓인가. 이 가을이 왠지 하루하루 가까이 다가오는 게 너무나 싫다. 요즘은 기후 온난화 탓인지 봄 가을이 매우 짧아진 느낌이랄까? 이게 아니어도 가을철은 몇 달만 지나면 곧 겨울이 찾아온다. 그래서인지 가을철은 나이 고개 문턱이나 다름없다면 지나치려나. 나이가 든다는 것은 노화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젊어서는 사실적 연령보다 두, 세 살 높여 보이기를 원했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일명 동안(童顏)이었나 보다. 항상 사람들은 실질적 나이보다는 서, 너 살 아래로 보곤 하였다. 그 때는 무슨 마음에서인지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게 참으로 싫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이를 물어오면 일부러 항상 두, 세 살 높여 말하곤 했었다. 요즘은 어떤가. 단 한 살이라도 젊게 보이길 원한다면 그야말로 발악에 가까운 일일까? 여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거울을 외면하진 않잖은가. 거울 앞에 서면 머리도 매만지고 얼굴 표정도 살핀다. 옷매무새도 가다듬는다. 늘그막에도 여자는 그만큼 자신외모에 관심을 갖고 달아나려는 청춘을 붙잡으려고 안간힘 쓴다고나 할까. 하지만 세월은 너무나 무심하다. 이런 여인네 심정 따윈 아랑곳 하지 않고 쏘아 놓은 화살처럼 흐르는 게 시간인 듯하다. 일상을 바쁘게 살다보면 더욱 세월이 빠르다는 걸 실감 하곤 한다. 반면 유유자적 한유(閑遊)한 일상을 보내노라면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느낌이다. 평소 정신적 여유를 갖고 지내야 하는데 늘 조급증을 느낀다. 삶은 이런 성향을 조롱하듯이 여유를 앗아가곤 한다. 수 년 전 둘째 딸아이와 로마 여행을 한 적 있다. 며칠 체재 하는 동안 그곳 사람들이 ‘피아노 피아노’라는 말을 연발하는 것을 들었다. 이 언어에 얼핏 음악, 미술 등 예술의 독창성을 지닌 이탈리아이라서 아마도 악기인 피아노를 의미하려니 생각했다. 그 때 곁의 딸아이가 피아노라는 뜻을 말해줘서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그 말은 ‘천천히’라는 이탈리아 말이란다. 하긴 어느 커피숍엘 들렸을 때 일이다. 자그마한 커피 잔에 한 숟가락 정도 진한 커피를 내려주는데 무려 30여 분 지체했다.    한국에선 그 시간이면 커피 마시기를 포기하고 자릴 뜨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그곳 국민들은 매사에 이 피아노 정신으로 임하는 듯 하다. 이런 그들 모습을 달리 본다면 게으른 민족이라고 태평함을 탓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이탈리아 국민성에서 여유가 안겨주는 유유자적함과, 용의주도성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때문인가 보다. 오늘날 그들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모든 문화유산 속엔 이 피아노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익히 아는 ‘모나리자’ 그림 만 하여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다른 일을 하면서 여가를 이용하여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 모델은 피렌체시 참사관 프란체스코 조우콘더의 아내인 리자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녀를 자신 작업실로 초대하여 그림을 그리는데 무려 3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3년이란 느리게 흐르는 시간 속에 그려진 탓인지 오늘날 그림 ‘모나리자’ 는 ‘영원한 신비의 미소’라는 수식어를 지니게 된 것이다. 느림의 삶을 논하다보니 마침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백영규 가수가 부른 ‘슬픈 계절에 만나요’ 라는 노래가 심금을 울린다. ‘귀뚜라미 울음 소리에 / 가슴 깊이 파고드는데/ 들리지 않는 그 목소리에/ 스쳐가는 바람 소리 뿐/ 바람결에 보일 것 같아/ 그님 모습 기다렸지만/남기고 간 뒹구는 낙엽에 / 난 그만 울어버렸네/ 사랑인줄은 알았지만/ 헤어질 줄 몰랐어요.< 하략>’ 위 노래 가사에서 “사랑인줄은 알았지만 헤어질 줄 몰랐어요” 라고 화자는 가을 이별의 슬픔을 토로하고 있다. 하긴 거둬들임과 상실, 이율배반적인 계절인 가을이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 가사 내용대로라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으니 가을은 분명코 슬픈 계절임에 틀림없다. 한편 필자는 경우가 다르다. 이 가을이 지나고 나면 또 나이를 한 살 먹게 돼 슬픈 것이다. 그러므로 올 가을만큼은 제발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시간이 조금씩 흐르기를 소망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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