넝쿨 같은 비가 마네킹을 덮쳤다. 마네킹은 얼굴에 들러붙는 나뭇잎을 뜯어내려고 손을 뻗친다. 이마에서 두 팔이 뻗어 나와 공중에 흩어진다. 마네킹은 연기처럼 찢어지는 두 팔을 보며 서른 번째 모퉁이를 돌아간다. 뼈끝에서 살이 찌는 구두와 장갑이 무거워 횡단보도 앞에 잠시 멈춘다. 문이 닫히기 전에 정육점에 가야 한다. 차도에는 질주하는 바퀴들이 핏물을 튀기고 있다. 마네킹은 목을 꺾어 뒤를 돌아본다. 사람의 앞면을 지닌 마네킹들이 걸음을 재촉한다. 타닥타닥 뼈 부딪는 소리가 바닥을 질질 끌고 모퉁이를 돌아간다.- 이민하, 「환상수족」 부분 이민하 「환상수족」은 육체가 자아 중심이 아닌, 타자화된 외부 사물처럼 기능하는 고단한 일상을 그려낸다. “넝쿨 같은 비가 마네킹을 덮쳤다. 마네킹은 얼굴에 들러붙는 나뭇잎을 뜯어내려고 손을 뻗친다.” 마네킹이 비에 덮치고 나뭇잎이 얼굴에 달라붙으며 손을 뻗는 순간부터, 시는 ‘나’ 혹은 주체로 육체가 익명 객체로 전락하는 과정을 재현한다.
“이마에서 두 팔이 뻗어 나와 공중에 흩어진다.” 팔이 이마에서 뻗어 나오고 공중에 흩어지는 모습은 신체 일부분이 자신도 모르게 제멋대로 굳고 움직이는 환상수족처럼, 주체가 육체적 자율성과 일치성을 상실해 가는 순간에 겪는 고통을 드러낸다.
“뼈끝에서 살이 찌는 구두와 장갑”처럼 외부에서 부여된 규범적 요소들이 신체를 덮고 있으며, 이는 반복된 노동과 일상 피로를 해체된 이미지로 표현한다. 시인은 고전적 아름다움이나 온전한 자아를 재현하지 않고, 오히려 파열되고 피로한 몸을 시의 미학으로 삼는다. 여기서 뉴웨이브적 감성은 전통과 재현 중심주의를 거부하고, 파편화된 감각과 일상 고통을 새로운 중심으로 삼는다.
“문이 닫히기 전에 정육점에 가야 한다”는 문장은 사소한 일상 행위조차 강박과 피로로 전환됨을 보여준다. 마네킹 움직임은 루프처럼 반복되며, “횡단보도” · “정육점” · “구두와 장갑” 같은 대상들은 사회적 기능과 강박적 시간 질서를 상징한다. 시 속 마네킹은 주체가 아닌, 사회적 패턴 속에서 조정되어 피로한 신체로 존재한다.
“사람의 앞면을 지닌 마네킹들”은 주체와 타자 경계를 흐리게 한다. 이들은 외부 타자가 아니라, 같은 조건 아래 파열된 존재로 공존한다. 시는 인간주의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윤리적 시선 전환을 시도한다. 주체와 타자는 더 이상 구분되지 않으며, 모두가 해체되고 피로한 신체로 구성된 집합적 존재가 되면서 전복을 전복하는 전복을 만들어 낸다.
즉 주체 해체가 있고, 동일성 미학이 무너지고 있지만, 동시에 ‘마네킹’ ‘나’라는 중심은 완전히 소멸 되지 않고 있다. 시인은 고통받는 육체를 그냥 소멸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고, 그것을 시적 언어로 붙들며 재현한다. 
 
그래서 이 시는 환상이나 초현실 영역으로 흐르지 않고, 일상 기록과 피곤한 하루를 드러낸다. 현실과 환상 경계가 흐려지지만 완전히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그 경계 흔들림이 시적 긴장을 만들고 있다.
시인은 초현실적 환상이 아닌, 환상과 단절된 환상을 다룬다. 너무나 피로해 현실이 낯설게 느껴지는 상태, 그 자체가 이 시가 가지고 있는 ‘환상’이다. 자아와 육체, 외부 환경 사이 경계는 피로로 인해 흔들리며, 이 진동이 시적 긴장을 형성한다. 감각 과잉과 결핍, 찢어지는 팔과 핏물 튀는 차도 같은 이미지들은 아름다움과 거리가 있지만, 시인은 이를 새로운 미학으로 재정립한다.
「환상수족」은 주체 해체 시학이면서도 재현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고통받는 육체는 소멸 되지 않고, 언어로 포착된다. 마네킹은 ‘나’일 수 있으며, 그 피로한 몸은 시를 통해 다시 말 걸기를 시도한다. 이 시는 언어로 고통을 붙들며, 소통 가능성에 대한 희미함 속에서도 타자와 세계를 마주하려는 윤리적 태도를 보여준다. 결국 해체된 몸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를 탐문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