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前漢) 시대의 효자 한백유(韓伯兪)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게 되어 천붕지통(天崩之痛)을 당하였다. 천붕지통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이란 뜻으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이르는 말이다. 하늘이 붕괴(崩壞)되는 변란이 실재에 어찌 있을까만은 아마 그것은 고통의 극대치를 묘사한 말일 것이다. 남편이 사세할 때 당한 고통을 붕성지통(崩城之痛)이라 일컬었다. 이 말의 의미는 ‘성이 무너질 때 맞게 되는 고통’이란 뜻이다. 성은 외침을 방어하는 방벽인데 이것이 무너짐에 의하여 닥친 고통은 하늘이 무너질 때의 아픔보다는 약할지 모르나 생을 지탱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고통일 것이다. 양친과 사별한 자식을 외롭고 슬픈 자식 즉 ‘고애자(孤哀子)’라 칭하여 왔다. 낳아서 길러주신 부모님과 영결(永訣)하게 되었으니, 어찌 외롭고 슬프지 않을 것인가. 부모의 은혜가 매우 크고 끝이 없다고 하여 호천망극(昊天罔極)이라 하였다. 지난날 인척의 상사(喪事)에 조문할 때가 있었다. 상주가 고애자가 되어 망극한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눈물을 흘리며 호곡하기에 다수의 조문객도 함께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그 곡성이 생세(生世)에 다하지 못한 불효의 진정한 뉘우침 같은 울림을 주었기 때문이다. 영위(靈位) 앞에 재배하고 간단한 위로의 말과 조위금을 전달한 다음 물러서면, 상주는 고맙다고 답례를 한 후 일상의 모습으로 복위(復位)하는 것이 상청(喪廳)의 보편적 상례(喪禮)였는데, 1남 2녀의 삼 남매가 2년 전에 친상을 당하고 또 오늘 어머님과 갑자기 사별(死別)하여 고애자가 되어 두세 명의 백관 사이에서 애처롭게 호곡하는 장면이 너무나 쓸쓸하고, 이 시대의 귀한 효도로 보여졌다. 지난 시대의 진정한 효자는 애친지심(愛親之心)이 절실하여 혼정신성(昏定晨省)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부모의 건강을 세심하게 살피며, 비록 타향에서 우거(寓居) 하더라도 부모를 생각하는 망운지정(望雲之情)을 가지고 문안의 효를 다하였으며, 돌아가셨을 때는 상즉치기지애(喪則致其之哀)라 친상을 입었을 때는 슬픔을 다하였다. 돌아가신 뒤에도 사사여사생(死事如死生)으로 생세에 섬기는 것과 같이 사후에도 정성을 다해 섬기면서 위자지도(爲子之道)를 다하였다. 이런 효행은 세태의 변고로 전래의 기념비적인 사적으로 기록될 뿐 회복 불가의 어려운 인륜이 된듯하니 어찌 유감스럽지 않으랴. 오늘날은 저마다 편리한 고급 휴대전화를 소지하고도 그 활용 방법에 인색하여 더러는 부자간 소통이 소원하다는 말이 없지 않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에 체념하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니 그 세태를 어찌 원망할 수 있을 것인가. 중국 전한 시대의 학자 유향(劉向)의 저서 『설원(說苑)』에 담긴 한백유(韓伯愈)의 효행 사례는 널리 알려진 전래의 사적이지만 아직도 유통기한을 마감하지 않고 회자 되면서 감명을 주고 있기에 다음과 같이 전해 본다. “백유가 잘못된 일이 있어서, 어머니로부터 회초리를 맞았다. 백유는 울었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지난날에 회초리로 때릴 때는 울지 않더니 지금은 전과 다르게 우느냐?(伯兪有過 其母笞之 泣 其母曰 他日笞 未嘗泣 今泣 他也)” “백유가 대답하였다. 유가 죄를 지어서 회초리로 맞을 때는 항상 아팠습니다. 오늘은 어머님의 힘이 쇠약하여 회초리로 맞아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웁니다(對曰 兪得罪 笞常痛 今母之力 不能使痛 是以 泣)”. 이 『설원』에 전해오는 고사는 회초리질에서 느낀 통증을 통해 어머니의 늙음과 쇠약해진 근력을 실감하고 평소에 살펴 드리지 못한 불효를 마음속 깊이 뉘우치며 그것이 슬퍼서 울었다는 의미로 효의 교육에 더러 잉용(仍用)되는 이야기이다. 아버지와 사별하고 모자가 생활하게 되면, 그 어머니는 자식 교육에 있어서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교육적 역할까지 감당해야 한다. 생업을 위한 가정의 경제적 운영도 어려운데 남편이 해야 할 교육을 맡아서 하자면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식들이 바르게 자라지 못하여 사회적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면 흔히 하기 쉬운 말로 ‘호노자식’이라는 인격적 비하를 듣기 쉬웠다. 그래서 지난날의 어머니들은 자식에게 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과잉보호하지 않고 마음 아픈 회초리질을 해가며 올바르게 자라도록 훈육을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매질 맞은 자식이 자랑스러운 사회인으로 자라서 칭송을 들을 때 그들은 어머니의 엄한 훈육을 잊지 못하고 감사하게 생각하였으며, 돌아가실 때 슬피 울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척 삼 남매가 슬피 우는 것 또한 그들이 부모님의 자별한 가르침으로 대학, 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들은 유명기업체의 부장, 장녀는 국정원 이사관에 적(適)하였고, 차녀는 모(某)광역시교육감의 교육정책비서관으로 재직하고 있음이 오직 부모님의 교육 덕분이라는 보은의 눈물이라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오늘날 대체로 삼일 장례로 천륜을 마감하는 세태에서 볼 때, 어머니의 태(笞)질에서 느낀 통증의 정도를 통해 근력의 쇠약을 자신의 불효로 깨달은 ‘백유가 흘린 효도의 눈물’ 그것은 현대인이 배워야 할 인문학적 교훈(humanities lessons)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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