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전성시대에 옛 수도 서라벌 인구가 얼마일까? 삼국유사에 서라벌에 178,936호에 1,360방, 주위가 55리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당시 한 가구에 5명~6명 정도 살았다는 보고서도 있어 보고서대로라면 서라벌의 인구는 무려 100만이 넘는 대도시가 된다.
5000만 시대인 현재 우리나라에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러나 1500년 전, 신라 시대에 인구가 100만이 넘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일까? 이 설을 믿는 사람도 많지만 절대 불가능하다는 설도 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말을 사실대로 믿어온 것은 신라 시 조왕 박혁거세 탄생신화와 이차돈이 순결할 때 흰색 피를 흘렸다는 점이다. 물론 서라벌의 범위가 현재와는 다르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도 있으나 귀족들이 호적만 수도에 파놓고 지방에서 살았다는 설도 있어 고고학자들도 명쾌하게 정리가 안 된 상태다.
하지만 인구 25만의 지금의 경주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를 계기로 신라건국 이후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고대왕국 신라 천년의 옛 수도를 복원하는 절호의 기회가 되고 있다. 
 
강대국인 미 중 정상을 비롯한 아태 국가의 원수들이 경주를 찾았고 국내 5대 재벌 총수들과 재계 인사가 총집결하면서 한때 신라의 전성기가 되살아난 모습으로 북적대 외신들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APEC 참가자들은 박물관에 전시된 금관을 관람하고 신라인의 뛰어난 예술적 가치에 감동했고 원더풀을 연발했다.
정상들도 신라예술의 황홀한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으며, 경주의 아름다움을 극구 칭찬했다. 이처럼 경주의 재발견은 APEC로 끝날 수 없게 되면서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실크로드 출발지 경주는 일찍이 무역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신라문화 역시 서라벌과 통일국가 영토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다. 
 
왕들의 무덤에 서역인들의 무장한 석상들에서 증명하고 있다. 경주가 오랜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경주 APEC가 기폭제가 됐다. 이번 정상회의에 주무 대인 보문관광단지는 폐허의 땅을 국제휴양지로 조성한 박정희 대통령의 안목 있는 백년대계의 설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먼저 경주복원 차원에서 보문관광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을 국제휴양지로 만들고 역사 도시 경주를 세계에 자랑하고자 했던 것이다. APEC 성공과 함께 경주가 왕도로 복원되어 인구가 30만에서 50만 100만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