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는 신라 지증왕13년 512년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벌함으로써 우리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삼국사기와 유사 공히 무혈정벌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이사부가 나무로 사자상을 만들어 사나운 맹수를 섬에 풀겠다고 엄포를 놓자 항복했다는 것이다. 이사부는 지증왕 6년에 실직주(삼척)군주로 임명받은데 이어 지증왕 13년 512년에 하슬라주(강릉)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정벌하게 된다. 유사에는 정벌후 군주가 되었다고 해 오늘날 삼척과 강릉은 출정장소와 이사부 관련 관광테마를 놓고 의견이 상충되고 있다. 울릉도는 죽변에서 140km 묵호에서 161km 포항에서 217km 떨어진 거리다.    문제는 사기와 유사에 등장하는 목우사자(木偶師子)다. 첫째는 사나운 맹수의 상징인 사자(獅子)가 아닌 사자(師子)로 표기한 것이다. 사(師)는 스승사이지만 사자의 실물조차 몰랐던 당시로서는 음을 빌려 사자를 표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자는 불교로 인해 우리나라에 호위의 동물로 등장한다. 탑이나 전각을 비롯 사자상 석등을 볼 수 있다. 불교가 공인된 법흥왕 이전에 사자가 사나운 맹수라는 사실을 알고 나무로 사자상을 만들어 전쟁에 활용하려 한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둘째는 목각 사자상의 등장은 기원전 1천3백여년 전의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목마를 연상케 한다. 신라 나아가 고려때 사기와 유사를 집필한 김부식과 일연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았을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트로이목마 버전이 신라 지증왕때 등장한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트로이목마는 호메로스의 역작 일리아드에 등장하는 트로이 10년 전쟁의 마지막 51일간의 얘기다. 트로이목마는 패색이 짓던 그리스연합군이 거대한 목마속에 정예병 30명을 숨겨두고 전장에 버려진다. 트로이군사들이 성안으로 목마를 이송하고 축제를 벌일때 목마속의 그리스연합 병사들이 뛰쳐나와 성을 함락시킨다는 내용이다. 트로이는 오늘날의 튀르키예(터키) 트로아스 평원지역으로 우리의 단군 시대에 존재한 도시국가다. 기원전 3천년을 시작으로 페르시아왕조를 거쳐 알렉산드로 로마제국 오스만제국을 거쳐 터키로 이어진 역사의 무대였다. 터키는 지난 22년6월 국명을 튀르키예로 변경했으며 23년 2월6일 7.8도의 강진으로 2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우리도 구조대를 급파했다. 한편 조선 숙종(1674-1720)때는 울릉도의 영토보전에 따른 고뇌를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하기도 했다. 과거시험의 책문을 보면 울릉도가 멀리 동해에 있는데 강원도에 속해있다. 수로가 멀고 험해 섬사람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현재 비어 있다. 요즘 일본인들이 죽도라 부르면서 백성들의 어로활동을 금지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우리 입장을 설명해도 일본은 들을 생각이 없다. 혹자는 장수를 보내 점거해 지키자고 하고 혹자는 혼란을 만들지 말고 일본인의 왕래를 허용하고자 하는데 변방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강구해 자세히 나타내도록 하라. 숙종때는 조선 최고의 절대왕권시기이며 재위 46년간 대동법시행을 비롯 상평통보를 주조해 화폐경제를 주도했다. 국방분야도 서위압록 동위토문이라는 백두산정계비를 통해 국경선을 확정했고 1690년에는 안용복이 울릉도는 조선의 영토라며 일본막부에 항의하기도 했다. 안용복사건은 당시 시행중인 섬을 비워두는 공도정책의 문제점이 현실로 드러났다는 점이며 숙종의 과거시험문제는 공도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을 타파하는 새로운 정책의 발굴이 절실했음을 알 수 있다. 아뭏던 숙종의 책문은 일본의 독도어거지와 관련해 영토수호를 위한 우리의 의지를 묻는 것으로 3백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장원급제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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