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이야기라 조심스럽게 꺼내봅니다만, 해마다 한 번 씩 이 무렵에 만나는 오래된 모임이 있습니다. 대학교 같은 학과 입학 동기 모임입니다. 졸업 후 각자 자리를 잡으면서 누군가의 제안으로 만나기 시작했으니 꽤 오래된 모임이긴 하지요. 
 
졸업은 했어도 대부분 같은 영역의 직업군에 속하다 보니 서로 동업자( :-) )로서 공감대 형성이 쉽고, 또 어떤 이들은 업무적으로 교차될 일이 생기기도 하니 만남이 이어지기 쉬울 수도 있었겠지요. 
 
식사 자리에서 누가 무심코 흘린 ‘처음 만난 지가 반 백 년이 되어간다’ 는 감상적인 말에 새삼 서로 얼굴들을 바라보니 살아온 시간이 얼굴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더군요. 갓 스물의 패기 넘치던 앳된 얼굴 대신에 앞에 앉은 상대의 이마에 뚜렷한 나이테와 서리 내린 머리털이 내 모습을 그대로 반영해 보여주더군요.
돌이켜보니 세월이 흐른 만큼 만나서 주고받는 이야깃거리도 나이를 먹어갔습니다. 직장이야기, 자신의 결혼과 가정생활 이야기를 나누던 것에서 흘러 이번 모임에는 부쩍 손자손녀 이야기가 꽃을 피웁니다. 제 자식을 키울 때의 어설픈 부모 역할과 고민 대신 할아버지할머니가 된 우리가 나누는 손자손녀의 재롱이야기는 오로지 사랑스러움과 자랑스러움만 가득했습니다.
이번 해에는 모교를 방문해보자 제안이 있어 점심 식사 후 다 같이 가을이 익어가는 모교 캠퍼스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거의 대부분 새로 건축되고 리모델링되어 당시의 교정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달라진 교정에서 사진도 찍고, 그런 중에도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과거의 강의동에 들러 옛날 자리에 앉아 보기도 하면서 가을 동화를 한 편 써 보았습니다.
유신 말기의 부옇고 매캐한 최루탄 가스 냄새 대신 젊음의 생기가 여기저기에서 과즙처럼 터져 나오는 오늘날의 교정을 보며 격세지감이 들었습니다.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되도록 흐른 오십 년 가까운 세월이 교정을 오가는 학생들의 옷차림과 표정에도 담겨 있습니다. 
 
그때는 항상 침묵만 하던 일청담 연못의 분수대가 물줄기를 시원스럽게 뿜어내는 것에서도 달라진 시대의 분위기를 피부로 느낍니다. 
 
고인이 된 어느 수필가의 책 제목인 ‘살아 온 기적 살아갈 기적’처럼, 우리들이 살아온 시간들이 모두 기적처럼 생각됩니다. 지난 시간은 용광로가 되어 우리나라가 겪고, 만든 온갖 희비애락을 녹여서 오늘의 기적을 낳았습니다. 
 
같이 모여앉은 모습을 사진으로 담고자 옆에 있던 한 후배에게 부탁하며 우리의 입학 학번을 말해주며 선배라고 하니 그 후배가 그저 입만 쩍 벌립니다.
올 한 해 동안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격렬한 정치시위나 나라간의 전쟁 소식을 접하면서 그들에게도 저 과정이 그저 고통과 고난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그들이 거듭나는 기적이 되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개발도상국들이 성장의 모델로 삼는다는 우리나라도 형과 아우가 서로 총을 겨누는 동족상잔이 온 국토를 거대한 폐허로 만든 아픔을 겪었지만 그것을 기적으로 승화시켜 오늘날 손꼽히는 경제대국으로 키웠습니다. 
 
거기에 육이오 전후에 폭발적으로 일어난 베이비 붐 세대의 출생률과 우리나라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이 바탕을 다진 것도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태어난 아기들이 젊은 나라를 만들고 성장할 동력의 주축이 되었을 것입니다. 
 
일할 사람이 많은 나라였을 테니까요. 게다가 교육받은 인적 자산이 지식 기반 사회를 이끌어 남 먼저 정보화 세계에 지입하고 선도할 역량을 준비하고 있었으니까요.
기적이라는 선물도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군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찾아오는 것이 기적이더군요. 수십 년 전 처음 만났던 싱싱하고 탄력이 넘치던 얼굴들에 새겨진 세월의 나이테는 기적을 준비하던 세대에게 주어진 훈장이라고 생각하렵니다.
동화는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지요. 우리 때는 없던 학교 상징과 이름이 새겨진 학교 점퍼를 나도 하나 떨쳐입고 어깨를 쫙 펴고 걷는 상상을 하며 올해의 모임을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