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박정희 대통령의 탄생 108돌을 맞았다.그날을 지나면서 자연스레 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정치적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한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길을 선택했는지부터 바라보고 싶어진다.그가 태어난 곳은 경상북도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 171번지, 금오산 자락이다.금오산은 바라보는 방향마다 서로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붓끝을 닮아 ‘필봉(筆峰)’, 관을 쓴 귀인의 형상 같아 ‘귀봉(貴峰)’, 거인이 누운 듯해 ‘거인봉(巨人峰)’, 부처가 누운 형상 같다고 해서 ‘와불상(臥佛像)’이라 불렸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산, 그 산 아래에서 태어난 박정희를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바라본 우리의 시선과도 닮아있다.1910년 국권을 잃고 민족 전체가 깊은 상처 속을 걷던 시기였다.그 격랑이 아직 채 멎지 않았던 1917년, 박정희는 세상에 나왔다. 그가 태어난 상모리는 한없이 가난한 농촌 마을이었다. 초가 90여 채가 여섯 개 마을로 흩어져 있었고, 집집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만큼 궁핍했다. 그중에서도 박정희의 집은 가장 가난했다.정신의학에서는 ‘환경적 박탈(environmental deprivation)’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두 가지 극단으로 향하기 쉽다고 본다. 무기력 속에 주저앉는 길, 혹은 결핍을 디딤돌로 삼아 강한 생존 동기를 키워내는 길. 박정희는 분명 후자의 방향을 선택한 사람이다.그의 어린 시절은 배고픔과 결핍의 연속이었다.날마다 마주한 가난과 주권을 잃은 조국이 남긴 깊은 상실감은 그의 내면에서 강한 의지의 원천으로 응축되었다. 외상이 오히려 의지를 강화하는 역설, 정신의학에서는 이를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이라 부른다. 어떤 위인도 처음부터 위인이 아니다. 그가 마주한 환경을 넘어서는 선택을 통해 위인이 만들어진다. 한 아이가 마주한 결핍, 울분, 눈물, 그러나 그의 해석과 선택이 한 사람의 방향을 결정한다. 박정희는 결핍의 아들이었고, 가난한 집의 일곱째 막내였다. 식민지의 그늘 아래 살던 소년이었고, 배움이 유일한 탈출구였던 학생이었다. 이는 단순한 환경적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재해석하며 극복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자기 결정적 선택의 토양이었다. 그는 이러한 환경적 외상을 딛고 내적 성장을 이루었으며, 훗날 부국강병(富國強兵)이라는 목표로 집약되어 갔다.박정희를 존경하는 이들에게는 이 형성의 지점이 그를 깊이 이해하는 단서가 될 것이고, 그를 비판하는 이들에게도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를 살피는 관점이 될 수 있다. 그의 성장 배경을 함께 보아야 이후의 선택들, 좋든 나쁘든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정신의학은 인간을 단순히 흑백으로 보지 않는다. 성장은 언제나 빛과 그림자를 함께 품는다. 한 시대의 지도자도 예외가 아니다.나는 박정희 대통령을 ‘완벽한 인물’로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결핍을 딛고 자신만의 길을 선택한 인간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한 인간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그가 어떤 시대의 공기 속에서 자라났는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온전히 보인다.탄생 108돌을 지나며, 그의 삶을 둘러싼 빛과 그림자 위에 그가 견뎌내고 스스로의 해석과 선택으로 빚어 온 내적 토대를 다시 생각한다.외적 결핍이 일상이었던 시대에 박정희는 그 결핍을 내적 강인함으로 전환했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기효능감을 국민 속에 심어준 지도자였다. 그는 시대의 결핍을 국가를 움직이는 에너지로 바꾸어 낸 인물이었다.오늘의 대한민국은 외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정신적 결핍은 오히려 더 깊어진 시대다. 이럴 때일수록 국민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지도자의 리더십이 절실하다. 지도자가 무엇을 우선의 가치로 삼고, 국민의 내면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가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질문이다.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 그리고 앞으로의 길을 만들어 갈 우리 모두에게 이 성찰이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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