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한국인 절도범들이 일본 대마도 관음사에서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반입한 사건이 있었다. 고려말 제작돼 서산 부석사에 봉안되었다가 조선시대 왜구에 의해 약탈된 것으로 밝혀졌고, 부석사는 소유권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약탈 문화재로서 부석사의 권리를 인정했으나, 2심과 대법원은 절도 행위와 취득시효 등을 이유로 일본 측 소유를 확정했다.    2023년 7월 판결 후에도 불상은 곧바로 반환되지 않았고, 여론의 부담 속에 국립문화유산연구소에 보관되었다. 2025년 1월, 불상은 잠시나마 고향 서산 부석사로 옮겨져 100일간 공개되었다. 700년 만에 돌아온 불상을 향해 신도들은 눈물로 작별을 고했고, 불상은 5월 일본으로 완전히 넘어갔다.    이 사건은 문화재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니라 정체성과 정의의 상징임을 일깨운다. 세월 속 이동이 교류였는지 약탈이었는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문화재는 본래의 땅에 있을 때 비로소 역사적 의미를 되찾는다. 경주 APEC이 역사적인 성과와 인상적인 장면들을 남기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 정상들이 신라 천년의 수도에 모여 경제 협력의 비전을 논의하고,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한 이번 회의는 단순한 국제행사를 넘어선 상징적 의미를 지녔다. 경주는 세계의 중심에 섰고, 신라문화의 깊이를 몸소 느낀 외국인 정상들의 찬사는 경주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그 화려한 가을의 기억 속에서, 경주인들의 입장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장면은 따로 있었다. 바로 신라 금관 여섯 점이 104년 만에 모두 그 본향인 경주에서 한 자리에 모인 순간이다. 1921년 금관총에서 첫 금관이 발굴된 이후, 일제강점기 3점(금관총·금령총·서봉총), 1970년대 2점(천마총·황남대총), 그리고 1972년 환수된 교동 금관까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신라 금관은 모두 여섯 점이다.    그 동안 이 여섯 금관이 함께 전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두 경주 고분에서 출토되었으나, 소장처가 서울과 경주로 갈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APEC을 계기로 국립경주박물관이 마련한 특별전에서 여섯 점의 금관이 모인 일은, 천년의 금빛이 고향으로 돌아온 역사적 귀향이었다. 신라는 황금의 나라다. 삼국유사와 중국의 전적은 물론 멀리 아라비아의 역사서에도 신라는 찬란한 황금의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발견된 금관이 열 점 남짓인데, 절반 가까이가 신라의 작품이다. 신라 금관은 금 재질로 만든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예술·종교·권력이 융합된 문명의 결정체다.    그런 금관들이 다시 고향 땅 경주에서 만난 것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환지본처(還至本處)’—문화재는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 라는 원칙을 상징한다. 문화재의 환지본처는 정의의 회복이자 역사의 완성이다. 일제강점기 총독부는 경주에서 출토된 주요 문화재를 보관 편의라는 명목으로 서울로 옮겼다. 그 중 상당수가 지금의 국립중앙박물관에 남아 있고, 신라 금관 세 점 또한 그때 서울로 갔다. 해방 이후에도 서울 중심의 문화 행정은 바뀌지 않았고, 지역의 문화권력은 서울에 예속되어 왔다. 이제 상황은 다르다.    경주국립박물관의 문화재 보존·복원 역량이 국립중앙박물관 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온도와 습도 조절, 정밀 복원, 디지털 기록 시스템, 학예 전문 인력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의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 무엇보다 경주의 빛과 공기, 도시 전역에 유유히 남아 있는 신라 문화의 배경 속에서 신라의 국보는 제대로 살아 숨 쉴 수 있다. 서울은 정치, 경제, 교육이 집중되어 복잡한 이해관계에 얽힌 거대도시다. 문화로도 국가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지 못해 모든 것을 가지려고 하지만 이제는 그 무겁고 오만한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 왜 서울이 모든 것을 가져야 하나를 근원에서부터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지방분권이 국정의 중요 과제가 된 지 오래다. 지방분권은 이제 정치적인 의미를 넘어서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지역민의 문화적 자긍심이 경제 효과로 이어지려면 과거 관행을 과감히 끊어내는 혁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번 APEC 성공은 경주를 세계가 주목하는 도시로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과는 APEC의 도시라는 일시적 수식이 아니라, 유구한 역사 문화 도시라는 영속적 가치를 세계를 향해 일깨운 데 있다. 신라 금관의 귀향은 때가 되면 돌아가면서 하는 특별 전시가 아니라, 문화재의 존재 이유를 되묻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우리는 묻는다. 금관은, 그리고 수 많은 국보급 유물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그 답은 명확하다. 문화재는 그 본향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그곳의 땅과 하늘, 사람의 기억이 문화재의 가치를 더 완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천년을 묻혀 있던 신라의 황금이 다시 빛을 내는 이때,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신라 금관은 다시 본처로 돌아와야 한다. 금관과 함께 묻혔던 먼 선조들의 혼이 서려 있는 곳이 함께 있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찬란했던 우리 고대 역사를 존중하는 길이며, 외세가 만든 왜곡을 바로 잡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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