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장이란 항열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의 묘소 뒤(위)쪽에 묘를 쓰는 경우를 말한다.
조선조에는 유교 사상의 영향으로 내로라하는 가문에서는 대체적으로 역장을 하지 않았다.
이것은 아랫사람이 위쪽에 올라감으로 해서 선대의 묘소로 들어오는 입수맥을 누르게 되고 또한 광 중(壙中)을 파게 되면 맥로를 차단하여 지기를 단절하기 때문이다.
풍수서 '조선의 풍수'에서는 '조상의 묘소 위에 타인의 묘소가 있으면 아래쪽의 분묘 소유자는 망한다'고 까지하였다.
그런데 전국에 산재해있는 묘지들을 답사하다 보면 명문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역장으로 쓰여진 묘소가 더러 있다. 먼저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동문리 자운서원 뒤쪽에 가면 조선 최고의 대학자 이율곡 선생의 가족 묘소가 있는데 부모님의 묘소가 자식의 묘소 밑에 역장으로 쓰여져 있다.
이곳 산자락에는 제일 위쪽에 율곡 선생의 부인인 곡산노씨의 묘, 바로 아래에 율곡 선생의 묘, 그 아래엔 선생의 맏형 부부합장묘, 그 밑에 율곡 선생의 부모 이원수와 신사임당의 합장묘, 제일 밑에 율곡 선생의 맏아들 이경림의 묘 순으로 쓰여져 있다.
선듯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율곡 선생 집안이 무지해서 역장을 쓰진 않았을 텐데 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그다음 충남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에 가면 우리나라 제4대 대통령을 지낸 윤보선 대통령의 가족묘가 있는데 이곳 역시 역장으로 쓰여져 있다.
제일 위쪽에 쓰여진 묘소가 윤보선 대통령과 공덕귀 여사의 합장묘, 그 바로 밑에 고조할아버지 내외분, 그 아래에 큰 증조부 내외분, 그 아래에 윤 대통령님의 부모 윤치소 내외분, 그 밑으로 증조모와 막내동생 윤형선의 묘 순으로 쓰여져 있다.
이러한 역장에 대해 살아생전 윤보선 대통령께서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어깨에 무등을 태우고 계신 모습이니 괜찮지 않느냐고 하였다.
그리고 조선 8대 명당 중 한 곳인 전남 순창군 인계면 마흘리에 가보면 조선 성종 때 대사간을 지낸 김극뉴의 묘소가 있다.
이곳은 원래 김극뉴의 장인인 박감찰의 신후지지였는데 딸의 계락으로 '명당에 물 붓기'라 하여 장사 하루 전날 밤 광 중에 물을 부어 아버지의 묘소를 위쪽에 쓰게 하고 훗날 남편인 김극뉴의 묘지로 사용하였다.
묘소의 배열을 보면 장인은 젤 위쪽에, 그 아래에 김극뉴의 부인, 그 밑에 남편인 김극뉴의 묘소다. 이곳 역시 부인이 남편의 위쪽에 있어 역장이다.
또한 경주 최부자댁의 묘소도 두 곳이나 역장으로 쓰여져 있다.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리 뒷산에 올라 보면 길 다란 혈장에 젤 위쪽이 1대 최부자 최진립의 맏형 최진흥의 묘소가 있고 그 아래에 증조모, 그 아래엔 증조부, 그 아래에는 조부모 내외분의 묘소가 있어 손자가 할아버지의 위쪽에 있다.
그리고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반연리 뒷산에 올라 보면 1대 최부자인 최진립과 2대 최부자인 그의 아들 최동량의 묘소가 있는데 이 역시 아들 묘소가 위쪽에 있어 전형적인 역장이다.
이외에도 조선 중기의 문신 조광조, 사계 김장생의 묘를 비롯해 전국에 수없이 많고 내로라하는 가문에서도 거리낌 없이 역장을 사용했으니 '역장사용불가론'에 대한 우리 주변의 시선과는 달리 많은 역장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