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자락, 월정교에 불이 켜지는 순간 나는 오래된 숨결을 느꼈다. 돌 위에 내려앉은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니라,천년 신라의 기억이 다시 깨어나는 신호 같았다.APEC의 성공적인 개최로 경주는 다시 세상의 중심에 섰다. 국내외 손님들이 이 도시에 머물며, 월정교의 물빛과 대릉원의 고요함에 감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경주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을 얻는다.신라왕경특별법 아래 진행 중인 복원사업 현장을 찾을 때면, 그곳은 단순히 돌을 세우고 흙을 다지는 현장이 아니다. 그 속엔 천년 전 사람들의 숨결, 그리고 천년 후 우리가 이어가야 할 사명이 함께 있다. 황룡사의 기둥 하나, 구황동 원지의 돌 하나에도 경주의 미래가 깃들어 있다.낮의 경주가 역사라면, 이제 밤의 경주는 감동이다. 대릉원의 몽화, 국립박물관의 신라 천년의 울림, 월정교의 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이 도시가 ‘문화의 수도’를 넘어 ‘감성의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음을 말해준다.도시가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건물이 서 있고 도로가 뚫려 있다는 뜻이 아니다. 그 안에 사람이 머물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일 때 도시도 비로소 숨을 쉰다. 나는 그 숨결을, 지금의 경주에서 듣는다.경주는 오랜 세월 “지나간 영광의 도시”로만 불려왔지만, 이제는 “다시 피어나는 미래의 도시”로 나아가고 있다. 신라의 돌무더기 위로 새로운 세대의 발자국이 겹쳐지고, 천년의 역사 위에 또 다른 천년의 꿈이 자라고 있다.경주가 잘 되어야 대한민국이 품격을 얻는다. 나는 오늘도 복원 현장의 바람소리를 들으며 다짐한다. 천년의 신라가, 다시 미래의 경주로 피어날 수 있도록 작은 일 하나라도 마음으로 살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