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金冠)은 예전에 주로 임금이 쓰던 황금으로 만든 관이다. 신라 금관이 아름답고 값진 것은 장신구에 내재한 의미 때문이 아닐까. 장신구는 세움 장식, 달개와 곡옥, 관 드리개, 새 장식과 조익형 관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움 장식은 나무 모양을 간략하게 표현한 것으로 신목(神⽊)이나 우주목(宇宙⽊)을 상징하고, 달개와 곡옥은 신성한 기운과 힘을 상징하며, 물의 신이자 왕권을 의미한다. 관 드리개는 북방 유목문화권에서 고찰되는 샤먼이나 혼례용 관모와 같이 관을 쓴 인물이 성(聖)의 공간으로 들어가는 문이자 천상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로 보는 견해와 천상에 맞닿은 나무의 기둥과 가지에 대비 되어 지하세계와 맞닿아 있는 뿌리를 상징한다는 해석이 있다. 새 장식과 조익형 관식은 김알지의 존재를 처음 알린 신성한 '닭(鷄)', 또는 닭을 모티브로 한 신성한 새, 즉 '신조(神鳥)'로 해석한다(naver). 이런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장신구가 금관에 장식되었다는 것은 금관이 단지 금으로 만든 관이 아니기에 예사로 볼 것이 아니라 신라인의 예술적 예지의 존귀한 가치를 느껴보게 하는 골드 크라운(gold crown)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번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문에 경주의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교동에서 출토되었던 6점의 금관이 국인과 세계인의 깊은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이들 금관을 보기 위해 연일 장사진을 치며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어서 우리 경주시가 활기찬 도시로 재생되는 듯하다. 그러나 금관 전시가 오는 12월 14일 끝나면 이 가운데 금령총 금관과 황남대총 북분 금관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서봉총 금관은 국립청주박물관으로 각각 돌아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경희(국민의힘, 황성동) 경주시의원과 한 시민단체는 출토지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존중한다면 신라금관 6점은 모두 경주에서 출토된 만큼 경주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며 금관의 환지본처를 주장하여 많은 시민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환지본처(還至本處)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며, 환귀본처(還歸本處)라고도 한다. 환귀는 다른 곳으로 떠나있던 사람이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뜻하며, 환귀본처는 본래의 자리로 다시 돌아오거나 돌아가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환귀본주(本主)는 물건이 본래의 임자에게 다시 돌아오거나 돌아감을 뜻한다. 모두가 본래 있었던 곳이나 주인에게 환귀하는 말이다. 2019년에 경순왕 영정의 환귀본처 행사가 해인사성보박물관에서 성대하게 봉행 되었다. 경순왕 영정은 왕이 국세가 고약(孤弱)하여 더 이상 나라를 통치할 수 없어서 왕자들의 간절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고려에 양국 할 뜻을 굳히자 태자 일(鎰)공은 통곡하며 부왕과 생별하고 곧 개골산으로 들어갔고, 차자 황(鍠)공은 부왕의 영정을 본떠 제작하여 처자를 버리고 가야산에 들어가 해인사에서 여생을 보내던 중 실화로 해인사가 불타게 되자 영정을 영천 은해사 상용봉 충효암에 이안(移安)하였다.    그 영정은 훗날 경순왕의 위패가 봉안된 경주 황남전으로 다시 옮겨 봉안하게 되었다(鍠讓國時摹奉王影幀棄妻子入伽倻山海印寺因寺失火奉守永川銀海寺上聳峯忠孝菴後移奉皇南殿)는 사적(史蹟)은 기록해오고 있다. 계자 명종(鳴鍾)공은 부왕의 대의(大義)를 체득하고 양국 행차에 배종하여 송도에서 25년 시봉(侍奉)하였으며, 고려 광종 12년 경주군(慶州君)에 봉군(封君) 되어 다시 환향하여 경주김씨의 득관조(得貫祖)로 오늘날 200만 성손의 봉향을 받아 오고 있다. 황공이 당시 해인사에 봉수한 영정은 도사(圖寫)한 것으로 신라 56왕 가운데 유일한 영정이다. 이 영정의 귀중한 원본은 숭혜전 감실의 시설이 열악하여 봉안에 부적합한 관계로 근년에 국립경주박물관에 기탁하였다.    현재 숭혜전에 봉안하고 있는 영정은 1794년 황남전이 중건될 때 왕명에 의해 이명기가 도사한 것을 1904년에 승려화가 이진춘이 이명기의 작품을 보고 그린 모사작이며, 해인사성보박관에 봉안되어 있는 영정 역시 이진춘이 그린 작품을 보고 나주김씨의 성손인 모 여성 화백이 그린 모사작이다. 신라 왕의 유일한 영정인 경순왕 영정을 다시 숭혜전에 영정각을 복원하여 환귀복전(還歸復殿)할 수 있는 위선사(爲先事)는 국가적 관심을 가지고 시급히 봉안해야 할 문화적 역사(役事)라 하겠다.    이것은 특히 백성의 목숨을 왕권보다 소중하게 여긴 경순왕의 애민사상(愛民思想) 때문이다. 이 사상은 ‘경천무운(敬天撫運) 왈(曰) 경(敬)이요 응시솔덕(應時率德) 왈(曰) 순(順)’이라 즉 “하늘을 공경하고 운명을 위무함이 경(敬)이며, 때에 순응하여 덕을 본받음이 순(順)이라”는 경순(敬順) 시호(諡號)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라 종언 이후 어언 천여 년이 지났으나, 경순왕 진영이 아직까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만 해도 자랑스럽기 그지없는 문화유산이다. 하루속히 원형을 복원하여 국보로 지정되어 숭혜전 영정각을 긍구(肯構)해서 금관과 더불어 환귀본전(還歸本殿) 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기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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