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리 맞아 시들고 색이 거멓게 바랜 화단의 한해살이 화초를 정리했습니다. 꽃집 앞에 내놓은 하얀색, 노란색, 붉은 빛의 꽃에 홀리어 사다 화단에 심은 것이 그저께 같은데, 곱던 색을 잃고 그저 시커멓게 색이 바랜 풀 더미가 돼 버린 것들을 잘라냅니다.    마른 페퍼민트 줄기를 걷어내려 손으로 잡아당기자 줄기가 닿았던 손에도, 옷자락에도 향기가 옮습니다. 심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자란 노란 산국화 덤불 혼자 남습니다.    문득 ‘동쪽 울타리 밑의 국화를 따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네(採菊東籬下, 悠然見南山)’라는 도연명의 시 한 구절이 생각나 화단에서 허리를 펴니 비록 남산은 아니지만 맞은편, 동쪽에 겨울 초입에 든 마을 안산이 눈에 들어옵니다. 시골집 거실에 앉으면 마을 안산이 이마를 치듯 가깝습니다. 항상 거주하지는 못하고 겅중겅중 널뛰듯 다니러 와 며칠씩 머물다 가지만 그래서 산의 변모가 더 잘 보이나 봅니다. 산이 겪는 한 해를 보는 나도 함께 겪습니다. 초봄의 산은 병아리 같습니다. 활엽수가 많은 산에 나무들이 새순을 틔우면 노란 안개가 산을 감쌉니다. 한 주쯤 지나고 가면 노란 안개는 걷히고 연두색으로 진화한 나무 아래 분홍 진달래들이 산을 덮습니다.    연두색과 분홍빛의 조화는 언뜻 새색시들이 입었던 유록색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연상시킵니다. 개인적으로 이즈음의 산색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리고 뻐꾸기 소리가 이 산 저 산에서 들리면서 나뭇잎의 색들은 점점 짙어집니다. 여름 산의 녹음(綠陰)은 건장한 젊은 청년들의 분출되는 생기와 힘을 느끼게 합니다. ‘엘랑 비탈(elan vital – 프랑스 철학자 베르그송이 소개한 개념으로 생명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진화하는 근원적인 힘) 그 자체입니다. 삶의 약동이 뿜어져 나옵니다. 시간이 흘러 그 활기도 서정주의 시 구절처럼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가을 산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가을 산의 다양하고 풍부한 색감은 비와 바람, 천둥과 번개, 가뭄과 홍수 따위 자연이 주는 온갖 것들을 겪은 경험의 색깔입니다. 익어가는 것이지요. 그리고 지금쯤의 산은 그런 모든 것들을 떨궈내고 조용하게 안으로 침잠하며 겨울을 준비하는 산이라고 할까요? 능선의 윤곽이 그대로 드러난 산, 아무 것도 지니지 않은 맨몸 그대로인 나무. 겨울 산은 남보다 더 잘나야 한다는 조바심과 오만과 가식과 위선을 스스로에게 더 이상 허용하지 않고 온전히 자신의 내면을 살펴 완전으로 나아가려는 초인(超人)을 닮았습니다. 미워하는 마음도, 사랑 때문에 웃고 울던 마음도 마른 나뭇잎 떨구듯 떨어버리고 안으로 단단해지기를 추구하는 그런 사람을 닮았습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산의 모습에서 사람의 일생이 보이는 것은 사람도 자연의 순환에 궤를 같이 하기 때문이겠지요. 겨울 산의 초입에 들어서니 지나간 날들에 내가 행했던 어리석음들이 다 돌아 보입니다.    아직 풋풋한 색이던 젊은 시절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지금에서야 눈이 트인 듯 선명하게 보입니다.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을 그때의 부모님 가슴에 무심코 박은 숱한 못 자국들, 자신이 아는 우물 안이 세상이라고 여기던 아둔함과 그로 인해 행했던 옹졸한 짓들, 날카로운 말과 타협할 줄 모르던 자만. 그때는 정녕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들입니다.    나 역시 부모가 되니 자식의 무심한 언행이 가슴에 상처를 내는 것도 알게 되고, 사계절을 다 겪어 보니 봄, 여름의 성장과 도약이 한 해의 전부가 아닌 것도 압니다. 어른들이 늘 하던 말, ‘지가 겪어봐야 안다’가 뼈저리게 와 닿습니다.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오면 다시 만물이 깨어나고, 자연은 그렇게 순환을 반복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허락된 사이클은 단 한 번이기에 후회라는 말, 회한이라는 말이 있는가 봅니다.    천주교에서 11월은 우리보다 앞서 죽은 모든 영혼을 기억하는 ‘위령성월’로 지냅니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앙상하게 뼈대만을 정직하게 드러낸 겨울산은 잿빛에 가깝습니다.    거기서 죽음이 연상되고, 나의 사소한 장난과 어리석은 언행을 사죄하기도 전에 이미 죽음에 든 이들이 떠오르면 후회보다는 그 영혼들을 위한 기도를 권하는 의도가 11월을 ‘죽은 모든 이를 생각하는 달’로 정한 것이려니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죽은 이들에게 용서를 청하는 묵상을 하고, 겨울 산의 나무들이 미련 두지 않고 잎을 떨어내듯이 아직도 차마 놓지 못해 움켜쥔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지 자신을 살피며 남은 11월을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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