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1896)은 어린 시절부터 폭약에 관심이 많아서, 깡통에 흑색화약을 채워 넣고 터트려서 대폭발을 일으키고 온 동네를 난리 나게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집을 날려버릴 정도로 큰 폭발을 일으켰으며, 노벨도 크게 다쳐서 몸이 몹시 불편하였다고 한다. 아버지인 임마누엘 노벨도 발명가로서 기뢰와 지뢰를 개발하여 러시아 제국군에 납품한 바 있고, 염산화약을 개발했던 인물이었다. 1855년 영국군이 이 수중 기뢰로 막대한 피해를 당했고, 한동안 영국 해군 함대가 무수히 불타고 터진 그 바다에는 악마가 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노벨은 아버지의 무기 공장에서 일하면서 폭약을 안전하게 만드는 연구를 하여 마침내 1866년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다. 폭발력이 뛰어나고, 무엇보다 매우 안전하였고 폭발력을 조절하기가 쉬웠으며, 취급하기에 용이한 다이너마이트는 광산업에 쓰이는 등 널리 사용되었다. 이 다이너마이트가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로 프로이센군이 프랑스군을 신나게 날려버릴 수 있었다. 이 덕에 노벨이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1895년 파리에서 한 신문이 알프레드 노벨이 죽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박사 사망. 가장 빠른 방법으로 가장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해서 떼돈을 번 인물, 어제 사망하다.”라는 기사이다. 이 기사는 자기의 형 루드비히가 죽은 것을 잘못 보도한 오보였다. 그러나 노벨은 이 기사를 읽고 자신을 ‘죽음의 상인’으로 표현한 사실에 크게 실망하면서 엄청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세상에 기억될 것인가?”하고 생각해 왔는데, 이 살아있는 노벨의 부고 기사는 그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참된 삶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서 세계인을 놀라게 하였고, 그로 인해 유럽 최대의 부호가 되었지만 신문에서 자기를 평가한 보도를 읽고 위대한 과학자로 칭송(稱頌)받기보다는 죽음의 상인이라 하였으니,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기까지 고뇌한 실험이 죽음을 거래하는 상인 되고 만 것이다. 그 어찌 심기가 불편하지 않았겠으리. 죽고 나면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인데, 좋은 기억으로 상기되기를 바라면서 세고(世苦)를 견디며 열심히 생활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일 것이다. 왜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 선량한 다른 나라의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가! 고성능 폭탄을 투하하고 신종무기를 사용해서 한꺼번에 대량 살상하고 건물을 파괴하여 초토화시키는 장면이 TV 화면에 비칠 때, 인간은 싸나운 동물보다 못한 악의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렇지 않더라도 각종 괴질로 고통받으며 편히 살지 못하고 죽어가는 인류가 많은데, 사람을 살리는 연구를 더 많이 하여 각종 병고로부터 해방 시킬 수 있도록 각국은 전쟁에 투입되는 재정보다는 인류의 평안을 위한 부문에 국가 재정의 배분이 더 많아야 마땅하다고 생각된다. 노벨은 자기가 발명한 다아너마이트로 인해 축적된 재산이 인류에게 유용하게 쓰이기를 바라면서 유언장을 썼다고 한다. 그 유언장에 담겨진 내용은 ‘자신의 전 재산에서 생기는 이자로 물리학, 화학, 생리학 및 의학, 문학, 평화 분야에 공헌한 사람에게 해마다 상을 주라’는 내용이었다. 그후 1년 뒤에 노벨은 죽었다. 스웨덴 과학아카데미는 그의 유언대로 유산을 기부받은 1901년부터 노벨상을 수여해 오고 있다. 그로 인해 죽음의 상인이 평화의 사도가 되어 세계인의 추앙을 받아오게 되었던 것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과 같이 권력과 아름다움은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깨끗한 가난은 언제나 즐겁고, 더러운 부(富)는 근심이 많다(淸貧常樂 濁富多憂)하였으니, 권력과 재산과 영예를 한꺼번에 일시적으로 가질 수는 있어도 영원히 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장은 인류를 각성케 하는 잊지 못할 향기로운 명언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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