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아파트 정원엔 갖가지 정원수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이곳엔 매화나무를 비롯, 벚나무, 감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아파트 거실에 앉아서 하릴없이 이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삶의 무게로부터 잠시 해방되는 기분이다. 특히 가을철만 돌아오면 눈이 호사롭다. 나뭇가지가 휘도록 열리는 붉디붉은 대추, 주황빛 감들은 계절 감각을 체감할 수 있어서 매우 낭만적이다.
이 때문에 근동에 있는 대지에 전원주택 건축의 꿈을 망설이고 있을 정도다. 눈만 뜨면 정원 숲에서 온갖 새들이 지저귄다. 또한 해마다 6월이 오면 근처 야산에서 종일토록 뻐꾸기가 목이 쉬도록 울어댄다. 이렇듯 목가적인 정경에 마음을 빼앗겨서 선뜻 이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집에서 한 발짝만 나서면 아파트 앞에 잘 정비된 호수 둘레 길이 있다. 이곳에서 윤슬이 반짝이는 호숫가를 바라보며 걷노라면 뒤척이던 마음이 어느 사이 평상심을 되찾는 느낌마저 든다.
이렇듯 자연의 품속이나 다름없는 쾌적한 환경에서 살아서인지 집 주위에 피어나는 들꽃 한 송이, 풀 한포기도 무척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러한 마음에서인가. 지난 가을, 세 여인이 정원에 심어진 감나무에서 긴 장대로 나뭇가지를 후려치며 감을 따는 모습이 몹시 눈에 거슬렸다. 이 광경을 목격하자 한걸음에 뛰쳐나가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가까스로 자제했다. 갑자기 딸들의 만류가 생각나서이다.
평소 불의한 일을 대하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필자 성격이다. 이를 자식들은 매우 우려한다. 딸들 말에 의하면 요즘 세상은 입바른 소리를 하거나 남의 일에 참견 하면 자칫 낭패를 당한다는 것이다. 
 
하긴 언젠가 버스 안에서 어느 여학생 운동화 끈이 풀린 것을 본 후, “ 학생, 운동화 끈이 풀렸어요.” 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그 여학생은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동안 필자를 노려보더니, “그래서요?” 라고 날카로운 어조로 반문을 한다. ‘남의 일에 귀찮게 왜? 참견이냐’ 라는 어투였다.
사실 그날도 어찌 보면 감을 따는 현장엘 안 나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보나마나 필자가 정원에 나갔더라면 감 따는 여인들 행동을 분명코 만류 했을 것이다. 아직 채 익지도 않은 풋감이나 다름없는 감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주민들이 정원을 산책 할 때마다 주황빛으로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며 가을이 안겨주는 정취에 취할 수 있는 기쁨을 그녀들은 매정하게 빼앗아갔다.
인간 이기심에 의하여 빼앗긴 게 어디 이뿐이랴. 자연이 베푸는 고마움, 타인을 위한 배려와, 진심도 때론 무참히 짓밟히곤 한다. 심지어 눈앞에 노인이 쓰러져있어도 외면하는 세상이다. 하긴 어느 여인은 두 다리가 괴사되고 그 부분에 구더기가 득시글거려도 배우자인 남편이 이를 외면, 끝내는 패혈증으로 세상을 하직했다는 뉴스엔 왠지 안타까움이 앞섰다. 
 
이렇듯 언제부터 인간성이 메마른 세상이 되었을까? 아무리 현대가 개인주의 이기심이 만연한 시대라지만 사랑하는 아내, 연로한 노인에 대한 애정과 공경심마저 저버려서야 되겠는가.
또한 옳지 못한 일을 목전에 두고서 바른 말이나 충언을 발설 못한다면 정의로운 사회 구현은 오직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사람은 사람에 의하여 배움도 터득하고 삶도 이루어지잖은가. ‘서로 돕고 의지하고’ 이게 아니어도 독불 장군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정이 메말라 가는 비정한 세태여서인가 보다. 문득 김국환 가수가 부른 ‘타타타’ 노래가 생각난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바람이 부는 날엔 바람으로 비 오면/비에 젖어 사는 거지 그런 거지/산다는 건 좋은거지/수지맞는 장사잖소/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하략>’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라고 위 노래 가사 속 화자는 이기심이 팽배한 세상을 향하여 항변조로 노래하는 듯하다면 지나치려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상대성 원리가 작용하잖은가. 상대방에게 먼저 덕을 베풀어야 자신에게도 그 보답이 돌아오는 원리는 인생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요즘은 타인에게 관심조차 없다. 우리의 고유한 심성인 따뜻한 인정도 점차 각박한 세태에 빼앗긴 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어서인지 올 겨울이 유독 추울 듯하여 지레 가슴이 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