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경주는 세계무대에 우뚝 섰다. APEC 정상회의를 맞아 보문관광단지와 불국사 일대 주요 호텔은 각국 정상들의 숙소로 지정되었고, 수개월에 걸친 리모델링과 환경 개선이 이어졌다. 이 변화는 단순히 숙박시설의 개보수를 넘어, 한 도시가 세계에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실험이었다.2024년 8월 28일, 경상북도는 이철우 도지사가 2025 APEC 정상회의를 위한 최고 수준의 숙박시설을 직접 챙기는 차원에서 서울의 롯데·신라호텔을 답사하였다. 김석기 국회의원, 주낙영 경주시장, 강인선 외교부 2차관이 동행한 가운데 잼버리 대회의 수치를 곱씹으며 성공을 다짐하였다. 나는 당시 정상숙소(PRS:presidential suite) 자문역으로 참여하며 공간의 방향성과 품격의 기준을 세우는 역할을 맡았다. 1. 한국미의 절제된 표현 ; 전통 미를 현대적 질서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낼 것.2. 공간의 분리와 연계 ; 정상 영역과 수행원 공간을 구분하되 내재적 흐름을 가동.3. 청결과 간결함을 최우선 ; 시각적 노이즈(산만함)를 줄이고 정돈을 기본으로 할 것.4. 우아하되 사치하지 않게 ; 품격은 과시가 아니라 격조에서 비롯된다는 점.5. 최저 수준이 전체를 좌우 ; 작은 자재 하나, 물품 하나도 허투루 선택하지 말 것. 물론 최종적으로는 각 정상의 개별성향 맞춤은 필수적이다. 이는 단순한 디자인 지침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하는 공간의 윤리적 기준이었다. 다행히 대부분의 시설이 이 방향을 충실히 구현하였고, 그 결과 이번 정상숙소들은 ‘조용한 품격의 한국미’를 보여준 모범적 사례로 남아있다. 경주는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이름난 도시지만, 국제적 숙박 인프라 측면에서는 오래된 틀 안에 머물러 있었다. APEC 유치는 도시 전체를 ‘세계 수준의 환대 공간’으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주요 호텔은 일제히 객실과 로비, 외관을 개편했고, 보문호를 중심으로 한 경관개선사업이 병행되었다.    이 리모델링은 단순한 외형 수선이 아니라, 공간을 통해 국가의 품격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정상숙소는 회의장만큼이나 중요한 외교의 장이다. 숙소는 편안함과 긴장의 균형, 사생활보호와 업무효율의 공존이라는 까다로운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이번 경주의 숙소들은 그 균형점을 찾는 데 성공했다. 공간의 질서, 조명의 톤, 재료의 질감 모두가 ‘품격은 조용한 힘’임을 말해주었다.한국미는 덜어냄의 미학에서 비롯된다. 지나친 문양이나 장식 대신 재료의 질감과 빛의 흐름으로 고요한 조화를 이루는 것. 어느 한 요소도 과하지 않게 현대적 감각으로 번안되었다. 그 덕분에 공간은 단정하면서도 따뜻했고, 외국 정상들조차 ‘차분하고 깊은 아름다움’이라 평가했다. 정상숙소는 보안과 효율이 모두 요구되는 복합적 공간이다. 사적영역, 공적업무 공간, 수행원 구역, 경호 동선이 명확히 구분되어야 하지만, 전체 리듬은 끊기지 않아야 한다. 나는 자문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연결성’을 강조했다.    서로 다른 기능의 공간들이 물리적으로는 분리되어 있으되, 시선과 동선이 간명하게 이어지는 구조를 추구했다. 청결함은 물리적 위생을 넘어 시각적 질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동 동선에서 시야의 혼잡을 줄이고, 색조와 빛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제안했다. 우아함은 비싼 재료에서만 오지 않는다. 조화와 비례, 절제된 비움에서 비롯된다. 조명은 은은하게, 색채는 절묘하게 눌러주어야 했다. 그래서 정상 숙소들은 ‘조용한 호사’를 구현했다. 작은 디테일 하나, 손잡이 하나, 화장실 도구 하나까지 면밀 기준으로 점검했다. ‘작은 것이 전체를 결정한다.’는 신념이 프로젝트의 완성도를 끌어올렸다.정상숙소는 도시의 브랜드를 높이는 상징적 공간으로 남는다. APEC 이후 경주는 ‘문화유산 도시’에서 ‘국제회의 도시’로까지 보폭을 넓혔다. 숙박시설들은 ‘정상숙소’라는 이력을 자산으로 활용하며, 이제는 행사용 공간에 머물지 않고 지속 가능한 문화자산으로 남게 되어, ‘세계정상이 머문 방’이라는 스토리텔링은 그대로 관광 콘텐츠가 된다. ‘APEC 정상숙소’라는 이름값은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경주의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발전시켜야 하겠다.    지속성을 위해서는 운영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품격은 한순간의 과시가 아니라 반복되는 일상의 관리 속에서 완성된다. 국제 수준의 관리 매뉴얼과 표준 절차를 확립하고, 보문단지·불국사·화백컨벤션센터·신라유적지 등을 잇는 연계 네트워크의 구축이 필요하다. APEC 2025 경주는 한국적 미학이 공간으로 구현된 외교의 무대였다. 정상숙소들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격조를 갖추고, 사치하지 않았으나 우아했다. 그 절제된 공간은 국가의 위상을 말했고, 도시의 미래를 비추었다.    이번 경험은 경주가 단순한 역사 도시를 넘어 품격의 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한다. 이 과정에서 APEC 추진단의 지극한 열성과 참여호텔의 각별한 협조야말로 높이 살 일이다. 이제 그 레거시는 건축물에 머물지 않고 운영의 태도와 서비스의 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청결하고 간결함 속의 우아함, 질서 속의 품위, 이것이 경주 정상숙소가 남긴 한국적 공간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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