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길에서 골목으로 접어드는 순간, 우산 끝에서 흘러내린 작은 빗방울이 손등을 적셨고, 빗방울 촉감이 오래된 기억을 불러냈다. 몇 해 전, 회의실 창가에 앉아 멍하니 노트북을 바라보던 동료 얼굴이었다.    그는 누구보다 밝고 성실했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나는 그 침묵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들 힘들지 뭐.” 혼잣말을 하면서 필자 일에 집중했다. 며칠 뒤 그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회사를 떠났다. 책상 위에 남겨진 커피잔을 바라볼 때, 필자는 뒤늦은 후회를 삼켰다. 타인 고통을 쉽게 ‘별거 아닌 일’로 넘겨버렸던 무심함을 후회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필자는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사람 상처에는 무심하면서도, 정작 필자 상처에는 끝없이 특별함을 부여한다는 점이었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알고 지내던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을 했는데, 그날 하루 내내 마음이 뒤틀려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마음속에서 수없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며칠 전 동료 침묵은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 우리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 내 속내를 들여다봐 주기를 바라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헤겔이 말한 인정투쟁이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바로 이런 일상 속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인간은 타인 시선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칭찬 하나, 눈길 하나에도 숨겨진 절실함이 있다. 필자가 고통스럽다고 말하는 순간, 그 말이 가벼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상처를 지나치게 키우기도 하고, 타인 상처를 지나치게 축소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된 태도는 사랑과 우정 관계에서, 가족 안에서, 직장에서 반복된다. 사회는 역할이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는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개인 상처를 희석한다. 제도가 상처를 다루는 방식은 항상 ‘보편성’이라는 틀 속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고통이라는 말은 제도 속에 들어오는 순간 범주로 정리되고, 너무 쉽게 ‘그럴 수 있는 일’로 둔갑한다. 며칠 전 산책길 강가 난간에 기대어 물을 바라보던 아이가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나 보여?” 엄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럼 보이지. 안 보면 어떡해.” 아이는 그제야 안도한 듯 다시 고개를 숙여 물빛을 들여다보았다. 누구나 아이처럼 ‘보이는 존재’이고 싶어 한다. 존재가 타인    눈에 비치지 않으면, 스스로 실존조차 흔들리는 이상한 두려움이 생긴다. 인정받지 못한 존재는 가치 잃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르키소스 신화는 단지 자기 모습을 사랑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타인 시선에 비친 자신에게 매달리다 삶을 잃었다. 물거울 속에 보인 얼굴은 나르키소스 얼굴이면서 동시에 타자가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인간은 물거울에 비친 자신에 대한 모습을 보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고,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해지고, 인정받지 못한 상처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한다. 나르키소스 비극은 결국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비극이다. 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겨울 빗소리가 유리창을 두드리며 작은 흔적을 남겼다. 이런 날이면 노트북을 열어 글을 써본다. 상처가 언어가 되는 순간은 더 이상 필자 상처가 아니다.    써 내려간 문장들은 누군가 읽어줄 작은 신호다. “나 여기 있다.” “나는 이렇게 아팠다.” “네 아픔은 어떤 모양이냐.” 글을 쓴다는 행위는 결국 타인을 향해 건네는 손짓이며, 동시에 필자 자신에게 보내는 되묻기다. 문득 생각했다.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결국 타인을 향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인정받고 싶은 상대는 언제나 필자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필자가 필자를 모른 채 받는 인정은 오래가지 못한다. 물거울 속 그림자를 붙잡는 것처럼 금세 흩어진다.    하지만 필자가 필자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타인으로부터 인정도 의미를 갖게 된다. 존재가 스스로 불러내는 힘은 이때 생긴다. 창밖 빗줄기가 조금씩 가늘어지고 있다. 흙냄새와 젖은 바람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 타인 상처에 귀 기울이는 일은 사람으로 남기 위한 마지막 윤리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윤리를 통해 우리는 조금씩 타인을, 그리고 다시 자신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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