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 외동읍은 경주의 남동쪽 관문으로 남쪽으로는 울산광역시의 울산국가산업단지라는 거대한 공업벨트와 맞닿아 있고 북쪽으로는 경주시의 신라문화권과 연결되는 복합적 위치를 가진 지역이다. 과거에는 전형적인 농업지역이었으나 울산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후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하나 둘 생겨나다가 지금은 동해남부 산업과 물류의 핵심 거점으로 성장했다. 여기에 급속하게 증가하는 인구수와 전통 농업이 산업과 공존하며 국가유산 수준의 문화재도 즐비해 외동읍은 경주시의 경제와 문화관광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외동읍은 1만1661 가구에 2만13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지역의 산업단지에는 1087개 기업이 입주해 있고 종사자는 2만1400명에 이르러 규모로 보면 경주시의 50%에 이른다. 문화재는 보물 2점, 사적지 3점, 도지정문화재 7점, 비지정문화재 8점 등 모두 20점에 이르러 신라문화권의 외곽이지만 상당한 수준의 역사유적이 존재하고 있다. 울산~포항을 잇는 동해안 산업축과 경주 도심을 연결하는 길목에 놓여 있어 일찍부터 공업 입지로 주목받았고 국도 7호선과 동해선 철도, 울산~포항 고속도로와 인접한 교통요충지라는 점도 외동읍의 큰 장점 중 하나다. 2000년대 이후 외동읍의 인구 증가추세는 매우 가파르다. 2000년 6548 가구, 2010년 7226 가구였던 외동읍은 2019년 9446 가구에서 1년 만에 600세대 이상 늘어나 2020년 4월 말 기준 1만101 가구를 넘어섰고, 인구도 1만9016명 수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이는 2018년 완공된 대단지 아파트 입주와 함께 울산·경주·포항을 오가는 근로자와 신혼·젊은 세대의 유입이 이어지며 ‘산업단지 배후 주거지’로서 외동읍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부각된 결과로 분석된다.외동읍에는 문산리·구어리·석계리·냉천리 일원에 외동일반산업단지, 외동2일반산업단지, 문산일반산업단지, 석계일반산업단지, 구어 중소기업공단, 구어2일반산업단지, 냉천일반산업단지 등 산업단지가 폭넓게 조성돼 있다. 이들 산업단지는 울산 석유화학·자동차 공업과 포항 철강 산업 사이에 자리한 ‘중간 기지’로, 자동차 부품·기계·금속가공·소재부품 등 다양한 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다. 기업체 수와 종사자 수가 경주시의 50%에 이르므로 숫자로만 봐도 경주시의 제조업 절반이 외동읍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처럼 외동읍의 경제 구조는 ‘산업단지 중심’의 경제라고 말할 수 있다. 낮시간에는 2만 명이 넘는 근로자들이 공단으로 출근하고 야간에는 인근 아파트 단지와 농촌 마을로 돌아가 지역 상권을 지탱한다. 제조업 기반의 탄탄한 일자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주거·교육·생활 인프라가 맞물리며 외동읍은 경주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 축으로 평가받고 있다.외동읍의 주거환경은 인구 증가의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한다. 2010년대 후반 이후 외동읍에는 수백 세대 규모의 공동주택 단지가 잇따라 들어섰고 울산과 경주 도심, 포항을 오가는 직장인들이 정착하기 좋은 베드타운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주시 자료에 따르면 외동읍은 산업 특화 지역임에도 새로운 아파트 입주 증가와 함께 세대 수가 빠르게 늘고 있어 앞으로도 꾸준한 인구 증가가 예상된다.교통 여건도 매우 양호하다. 동해선 철도가 운행 중단됐지만 울산~포항 고속도로, 경주 내남~외동간 국도 대체우회도로 등 광역 교통망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어 울산, 경주, 포항을 30~40분 안팎에 오갈 수 있다. 다만 울산시 경계에서 외동읍 구간까지 국도 7호선 일부가 여전히 2차선으로 남아 있어 출퇴근 시간대 병목 현상의 주범으로 지적되며 확장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경주시와 울산시가 우회도로 개설을 서두르고 있어 곧 이 문제는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외동읍의 문화·관광 자원은 신라문화의 우수함과 직결된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문화재는 통일신라 왕릉 가운데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 원성왕릉이다. 통일신라 제38대 원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 능은 원래 이곳에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고 수면 위에 왕의 시신을 걸어 장례를 치렀다는 속설 때문에 ‘걸 괘(掛)’자를 써서 괘릉이라고 부른다. 원성왕릉이 귀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데에는 봉분 아래의 호석에 새겨진 12지신상과 봉분 앞쪽에 돌사자, 문인·무인석, 화표석이 차례로 배치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석조군은 따로 하나의 보물로 별도 지정될 정도로 예술성이 높으며 그 가운데 서역인의 얼굴을 한 것으로 알려진 무인상은 ‘페르시아 무인상’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돼 당시 신라의 서역 교류설을 입증해 주고 있다. 괘릉리에 위치한 영지는 백제의 장인 아사달과 그의 부인 아사녀의 슬픈 사랑이야기를 담은 못이다. 백제에서 건너와 불국사의 석가탑을 만든 석공 아사달이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아사녀는 서라벌을 찾아왔지만 남편을 만날 수 없게 되고 대신 탑의 그림자라도 보고 돌아가라는 말을 듣고 연못가에서 그림자를 기다렸다. 이미 완성된 다보탑의 그림자는 연못에 비치고 있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석가탑의 그림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도록 기다리다 지쳐 절망한 아사녀는 마침내 연못에 몸을 던지고 그때부터 사람들은 석가탑을 그림자가 없는 탑, 즉 무영탑이라고 부른다. 아사녀가 몸을 던진 못이 바로 영지다. 모화리 봉서산 기슭에 자리한 원원사지는 통일신라 시대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안혜·낭융 같은 승려와 김유신 등의 무장 세력이 함께 창건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 개인 신앙을 넘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는 호국 사찰로 기능했다고 전한다. 현재 절은 사라지고, 중심 건물 앞에 세워졌던 동·서 두 기의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원원사지는 통일신라 후기 종교와 예술의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산으로, 보물 제1429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으며 지금은 소박한 산책 공간으로 탈바꿈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괘릉리 감산사 터에 남아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통일신라 시대 불교예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이 불상은 한때 감산사의 본존불로 모셔졌으며 사찰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이 불상만이 자리를 지키며 옛 신앙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이 불상은 절제된 조형과 굳건한 체구를 통해 깊은 정신성과 종교적 위엄을 담아낸다. 감산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외동읍이 품은 문화적 자산이자, 신라 불교미술의 정수 중 하나다.산업단지의 이미지가 강하지만 외동읍은 여전히 농촌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전체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48㎢가 농지·대지 등으로 분류되며 평야 지대에는 벼와 밭작물이, 구릉지대에는 과수와 채소 재배지가 펼쳐져 있다. 형산강과 지류를 따라 형성된 충적평야는 오래전부터 곡창지대로 활용돼 왔고 일부 마을에서는 시설원예와 축산업도 함께 이뤄진다. 공단 주변에는 농지와 공장, 주거지가 혼재한 전형적인 농공복합 경관이 나타난다. 여동형 외동읍장은 “외동읍은 경주시의 중요한 경제산업지역이지만 여전히 도농복합도시로서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다”며 “농업과 공업이 상생해 지역발전과 고용창출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여 읍장은 “많은 기업체가 산업단지에 입주해 있지만 노동자 부족현상이 있어 이를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분위기로 문화의 격차 문제가 불거지기도 하지만 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를 잘 만들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동형 읍장은 또 “경주시에서 안강읍 다음으로 큰 도시인 외동읍이 잘 살아야 경주시의 전반적인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며 “경주시가 국제적 문화관광도시로 커나가는데 외동읍이 적극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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