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시 진량읍은 경상북도와 대구시의 경계에 자리 잡은 읍 단위 행정구역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농업과 첨단 제조업, 대학 교육과 역사문화, 생활 인프라가 촘촘하게 엮여 있는 입체적인 공간이다. 평야와 구릉이 어우러진 자연환경 위에 산업단지와 대학교, 과수원과 전통마을이 공존하는 이곳은 오늘의 경산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진량읍은 경산시의 동북부에 위치한다. 면적은 약 46.18㎢로, 이 가운데 논과 밭이 12㎢ 이상을 차지하고 임야가 14㎢를 넘는 등 평야지와 완만한 구릉지, 산지가 적절히 섞여 있다. 지형적으로 구룡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 사이에 분지 형태의 평야가 형성돼 있는데 이 분지 지형은 농업 생산과 시가지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터전이 돼 과수원과 주거단지, 상가가 한데 어우러진 진량읍의 공간 구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오늘의 진량읍은 농촌과 도시가 공존하는 도·농복합지역이지만 인구 구조만 놓고 보면 중소 도시급에 속한다. 읍 전체에는 1만7615가구 3만7910명의 주민이 거주하며 이 중 외국인은 4864명에 이른다. 산업단지 근로자와 대학생, 다문화 가정 등이 어우러지면서 전국 읍·면 단위 가운데서도 상당한 인구 밀도를 보이고 있다.진량읍에는 1956년 설립된 사립 종합대학인 대구대학교의 경산캠퍼스가 자리하고 있다. 경산캠퍼스는 2만661의 학생이 재학 중이며 장애학생 교육과 특수교육, 복지 분야에 강점을 가진 대학으로 알려져 있다. 또 영남신학대학교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 진량읍은 명실상부 ‘캠퍼스 타운’의 성격을 가진다. 대학과 산업단지가 맞닿아 있는 구조는 산학 협력과 인력 공급, 창업 생태계 조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주며 이를 통해 진량읍은 학문·연구·산업이 한데 어우러진 생활 공동체로 진화해 가고 있다. 여기에 진량읍 내 여러 마을과 상권에 대학생들이 상시 유입·거주함으로써 지역에 젊은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진량읍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산업단지다. 진량읍에는 모두 870개의 기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상시 종사자 수는 2만1991명에 이른다. 업종별로 보면 기계·금속 분야 업체와 근로자 비중이 특히 높아 경산시와 대구권의 자동차 부품 및 기계 산업을 실질적으로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진량읍의 산업단지에는 315개의 기업이 입주해 있고 전체 종사자 수는 1만4532명에 이른다. 산업단지에서 창출하는 경제효과는 내수 약 5조6000억원, 수출 약 1조8000억원 규모다.
진량읍을 대표하는 기업으로는 자동차 램프와 각종 부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부품사 에스엘, 전기·전자 커넥터를 생산하는 타이코에이엠피 한국법인,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 아진산업 등이 있다. 그 중 새롭게 떠오르는 기업이 있다. 과실액상차 전문 생산업체인 ㈜초록원이다. 이 회사의 주력제품은 유자차와 지역내 주요 특산물인 경산 대추를 활용한 대추차, 그리고 안동지역의 생강을 활용한 생강차, 고령지역의 딸기를 활용한 딸기잼 등 차와 잼류로 국내는 물론 해외 여러 국가에 수출하고 있다. 초록원은 2010년 상해 SIAL차이나 전시회 경상북도관으로 처음 참여해 수출길을 열어서 이후 각종 박람회와 무역사절단 등을 꾸준히 참가해 2015년 100만불 수출탑, 2023년 300만불 수출탑을 수상했으며 올해는 5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할 예정이다. 올해 초록원의 송점철 대표는 식품외식산업 발전에 공을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산업단지와 함께 진량읍의 또 다른 얼굴은 과수다. 진량읍은 복숭아, 자두, 포도, 대추 등의 과일도 풍부하게 생산된다. 진량읍의 복숭아 재배 면적은 약 281.97ha, 생산량은 연간 2684톤에 이른다. 자두와 포도, 감 재배도 활발해 자두는 28.38ha에서 224톤, 포도는 61ha에서 799톤이 생산되고 있다. 특히 복숭아와 자두는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직거래 행사에서 소포장(800g·1kg 등) 전략으로 큰 호응을 얻으며 1인 가구와 소규모 가족의 수요에 맞춘 신선 과일 브랜드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진량읍은 따스한 햇살과 비옥한 토양, 그리고 적당한 일교차가 어우러진 천혜의 과수 재배지다. 이곳에서 자란 복숭아는 알이 굵고 빛깔이 고우며 과육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씨 주변까지 고루 달아 소비자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자두 또한 진량읍의 기후와 토양, 그리고 농부들의 오랜 재배 노하우가 만나 더욱 빛을 발하는 대표적인 여름 과일이다. 뜨겁게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익어가는 자두는 특유의 선명한 색을 띠고, 손에 쥐었을 때 묵직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과육이 튼튼하게 여문다.
산업화된 오늘의 모습과 달리 진량읍은 오랜 역사와 문화유산을 품은 고장이기도 하다. 먼저 신라의 군사 시스템을 보여주는 대표 유적으로 국가사적 제218호인 경산 병영유적이 있다. 이 유적은 김유신이 압량주 군주로 있던 시절 군사 훈련장이었다고 전해지는 곳으로 압량리·내리·선화리 일대를 잇는 세 개의 연병장 유적 가운데 제3연병장이 진량읍 선화리에 위치해 있다. 야트막한 구릉의 선단부를 깎아 만든 원형 광장과 지휘대 토루는 고대 군사훈련장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희소한 사례로 평가된다.조선 이후 유학자들과 지역 사대부의 삶을 보여주는 정자와 서원도 다수 남아 있다. 조선 후기 학자 김익동이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을 위해 세운 구연정, 요산 박운달 부자의 학행과 묘를 기리기 위해 건립된 원모정, 박계득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세운 경사재, 유학자 박치준이 학문과 교육을 위해 지은 괴정, 지역 사업에 힘쓴 정응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애련정 등이 그것이다. 도천서원과 율산서원은 경주이씨와 밀양박씨 문중에서 여러 선현을 제향하는 서원으로, 지금도 정기 향사가 이어지며 지역 유림의 정신적 구심점 역할을 한다.
무형문화유산도 풍부하다. 진량읍 보인리에서 전승되는 보인농악은 산업화 과정에서 명맥이 끊길 뻔했으나 주민들이 ‘보인농악보존회’를 결성해 복원해낸 사례로 유명하다. 덩덕궁 가락과 삼채, 별다드래기·덧뵈기장단 등 고유한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경북 남부지방 모의농사굿의 전형을 보여주는 예로 2017년 경북무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다.
진량읍의 대구대학교 경산캠퍼스 내 박물관 소장품 중에는 국내 최초의 한글 점자 교재로 평가받는 로제타 홀 한글점자 교재가 있다. 로제타 셔우드 홀은 19세기 말 조선 땅에서 의료 선교사이자 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최초의 한글 점자 체계를 고안했다. 1897년 그는 조선어의 음운 구조에 적합한 4점식 점자를 만들어 당시 한글 학습서였던 ‘초학언문’의 내용을 점자 형태로 옮긴 교재를 제작했다. 이 점자책은 맹인이었던 제자들과 함께 실질적인 교육 자료로 사용됐다. 이 교재는 1926년 이후 새로 정립된 6점식 점자 체계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특수교육의 기반이 됐고 시각장애인도 한글을 읽고 배울 수 있는 길을 처음으로 열었다. 이 점자책은 그 역사적·교육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2년 공식적으로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진량읍 주민자치위원회 류수상 위원장은 “겉으로만 보면 진량읍은 대규모 산업도시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인구소멸이라는 운명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적어 인구가 줄어드는 현상을 막기 위해 교육 인프라와 먹거리의 다양성 등을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진량읍 이장협의회 송원균 회장은 “최근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경제불황이 진량읍 공간에도 심각하게 적용되고 있어 인구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며 “공단이 다시 활기를 되찾아 진량읍 전체가 생기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조택환 진량읍장은 “진량읍은 경산시의 읍면 중 가장 규모가 크며 도시화가 착실하게 진행된 안정된 고장”이라며 “산단 조성 이후 주민의 경제생활이 안정됐고 교육 인프라도 양호한 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안 사업인 진량 하이패스 IC가 완공되고 경산-울산간 고속도로가 신설된다면 월활한 물류수송 등으로 진량읍의 경제발전은 가속화될 것”이라며 “주민의 삶과 진량의 발전을 위해 제5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하고 장기적으로는 읍민 운동장 건립도 구상 중에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