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중력의 지배를 받는다.’ 지금까지 과학계에서 생각하는 정상 우주가 맞다면, 이것은 아마도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우리는 보통 ‘진리는 불변이다.’라고 생각하지만, 많은 진리는 의외로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해왔다.    대표적으로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바뀌었고, 태양계의 행성 중에서 명왕성이 탈락한 것이다. 따라서 변하지 않는 유일한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중력의 지배를 받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 다양한 생명체 중에서 우리 인간은 우주 어딘가에 우리 지구와 같은 행성이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만큼 지구는 많은 행성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다. 지구에 사는 우리 또한 그렇다.    그렇다고 우리가 지구상에서 최고의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뇌의 지능이 진화되어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알려고 하는 독특한 존재다. 궁금증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미 알고 있다면 궁금증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알지 못한다. 눈을 멀리 바라보면, 우리의 우주가 가속 팽창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근 우리나라 연구진에 의해 제기된 것처럼 감속 팽창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눈을 지구로 좁혀, 깊은 바다에는 어떤 종류의 생물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잘 모른다. 심지어 우리 몸속의 미생물 숫자와 이들이 하는 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 지구의 중력은 생명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포유류에게는 머리에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심장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사람의 수축기 혈압은 정상적이라면 120mmHg이다. 키가 큰 기린의 혈압은 우리보다 2.5배 높은 압력으로 펌프질해야 뇌에 혈액을 공급할 수 있다.    동물의 몸집에 따라 혈압이 다르다. 하지만 동물 각각의 뇌에 공급되는 혈압은 거의 일정하다. 만일 우리보다 높은 혈압으로 직접 뇌에 혈압이 공급된다면 뇌출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위해 기린에게는 특수 조직이 있다. 움직이는 생명체의 압력 작용이 그렇다면 식물처럼 움직이지 않는 생명체의 압력 작용은 어떨까. 식물이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잎까지 운반하는 과정은 물 분자와 식물의 응집력과 부착력 그리고 모세관 현상에 의해 이뤄진다.    바로 이 과정이 지구의 중력에 대응하는 식물의 압력 작용이다. 매화나 철쭉 같은 키 작은 나무는 작은 대로, 메타세쿼이아 같은 키 큰 나무는 큰 대로 이렇게 지구의 중력에 대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들 생명체가 이러한 이론을 알지 못해도 이들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따라서 대부분의 지구상 생명체는 과거에 경험하면서 교훈을 얻고 영리하게 대응하는 행동이 아니라, 변화에 반응하도록 진화적으로 새겨진 행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더구나 우리 인간의 삶이 경험과 교훈을 통해 적응한다지만 실상은 진화에 새겨진 단순한 행동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왜 알아야 하지’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을까로 질문하는 것이 더 타당할지 모른다. 이에 대한 답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이다. 만일 알지 못하는 상태 그대로 두었다면 우리는 진화의 옆길로 빠졌을 것이다. 진화의 사다리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그 후 아프리카를 떠나 지구의 모든 곳으로 이동하여 살고 있다.    또한 이제는 지구 아닌 다른 행성으로의 이동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행동은 진화적으로 우리 유전자에 새겨진 듯 보인다. 이런 행위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창조적인 행위를 즐기는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 장은수는 「읽다, 일하다, 사랑하다」에서 미지(味知)와 무지(無知)를 구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지는 무지와 다르다. 무지의 눈으로 쳐다본 삶은 암흑이나 다름이 없어서 앞날이 컴컴할 뿐이다. 그러나 미지는 두려운 예감의 형태를 띤다. 지금의 인생 흐름을 뒤흔들 일이 분명히 일어날 듯한 기대가 그 안에는 담겨 있다(…). 한 철학자는 인생길이 분기하는 이 지점을 사건, 즉 ‘다른 것이 출현하는 순간’이라고 불렀다.”    그렇다, 우리는 무지의 세계가 아닌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행복한 순간을 즐기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이자 호모 루덴스(Homo ludens)다. 조직에서의 우리 또한 마찬가지이어야 한다. 원전 등 국가중요시설의 보안 업무를 책임지는 시큐텍(주)의 구성원들도 이런 순간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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