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 거지, 빌라 거지라는 멸칭이 초중등학교 교실에서 이미 유행한 지 꽤 됐다고 한다. 개근 거지는 체험학습을 가지 않아 결석 없이 매일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한다. 학교에 개근하는 아이들은 가정에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해외여행을 하지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빌라 거지는 아파트나 단독주택이 아닌 다세대 주택(빌라)에 거주하는 아이들을 싸잡아 거지로 매도하는 나쁜 말이다. 순수해야 할 아이들끼리도 아파트에 살지 못하고 학기 중에 해외여행을 못 가는 친구를 거지 취급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누가 하얀 도화지 같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혐오와 차별부터 그려 넣어 이렇듯 괴물로 만든 걸까. 물질 만능과 배금주의가 어린 시절부터 배도록 만든 건 누구일까. 아이들은 보고 들은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부모 세대가 평소 보여준 모습이 거울에 비치듯 아이들에게서 나타난다. 아이들이 빌라에 살고 해외여행을 못 가는 건, 그 자체로도 비하 대상이 아닐뿐더러 아이 자신의 책임은 더욱 아니다. 부모들의 경제적 수준 격차를 이유로 아이들 사이에서 벽이 생기고 소외감과 고통을 느끼는 무리가 생긴다면 이 나라의 장래가 밝을 리 없다.아이들까지 희생양을 설정해 혐오하며 공격하고, 타인의 상처에 공감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면서 사회 분위기와 담론을 이끄는 정치권에 가장 큰 책임을 묻고 싶다. 정치의 역할은 나라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타협점을 찾아냄으로써 개인 간, 이해집단 간 긴장도를 위험수위 아래로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회 규범과 질서가 붕괴하는 아노미로 치닫지 않고 극단적인 충돌도 발생하지 않게 된다.과연 우리 정치권은 이런 조정자 역할에 충실했는가. 조정과 협상은커녕 오히려 계층·성별·세대·지역 간 편 가르기, 혐오, 갈등, 반목을 키우는 데 앞장섰던 건 아닌가. 혹시 대립과 다툼의 에너지를 정치적 지렛대로 활용한 적은 없는가. 정치권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 진지하게 던지며 자성하고 적절한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어린아이들마저 혐오에 무감각해지는 건 마지막 위험 신호이니까.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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