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장군이 기웃대니 갑자기 추워졌다. 따뜻한 온돌방이 문득 생각난다. 화롯불에 구워 먹던 군밤. 찬바람에 문풍지가 울던 그 겨울밤. 꽁꽁 얼어붙은 물그릇. 손에 쩍쩍 달라붙는 문고리. 그리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나붓나붓 그때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리움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감정 중 하나이다. 인간은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장소를 기억하며, 그 기억 속의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보낸다. 그리움은 존재의 증거이며 동시에 부재의 그림자다. 그리움은 추억보다 훨씬 애잔하다. 나이가 들수록 그리움의 대상은 늘어난다. 어린 시절의 골목,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님, 한때 자주 걷던 골목길.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정겨웠다. 그리움은 시간의 먼지 속에 숨어 있다가, 불현듯 찾아온다. 그 순간, 잊고 있던 자신을 다시 만나게 된다. 시인은 그리움을 언어로 적고, 화가는 그것을 색으로 그리고, 가수는 노래로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이라도, 그리움의 실체를 오롯이 담아낼 수는 없다. 그리움은 표현되는 순간에도 계속 자라난다. 그것은 살아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리움에 형태가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다가가면 한 뼘 더 멀어지는 그림자. 그리움은 언제나 조금 부족하고, 조금 멀리 있는 형태이다. 손 닿을 듯 말 듯한 실루엣이다. 잡으려 하면 흩어지고, 잊으려 하면 다시 모여드는, 보이지 않을수록 더 짙어지는 안개의 결. 천천히 증발하는 듯한 안개 같다. 손때가 묻고 모서리가 닳았지만 버릴 수 없는 무언가. 그 안에 담긴 말과 침묵이 그리움의 주름이 된다. 오래된 편지처럼 구겨진 종이 같다. 스치듯 떠올린 기억이 마음 표면에 원을 그리고, 그 원이 천천히 퍼져 나가며 다시 잔잔해지는 모습. 마음 안쪽에서 또렷해지는 파문 같다. 또한 완전히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빛. 보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를 잊지 않으려 켜두는 작은 등불 같다. 공중에 떠 있는 작은 불빛 같다. 그리움에 색이 있다면 무슨 색일까? 비 온 뒤 저녁 하늘처럼, 말끔히 맑아지지 못한 마음의 잔향. 보고 싶은 마음이 묵묵히 가라앉아 있는 짙은 청회색이다.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흐르는 작은 물결 같아,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은, 흐린 파스텔 블루이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련함. 기억과 꿈 사이에 놓인 은은한 연보라색이기도 하다. 그리움은 슬픔만이 아니라 ‘소중했던 순간의 빛’도 함께 품고 있어서, 어둠 속에서 아주 약하게 반짝이는 금빛으로도 느껴진다. 그리움에 맛이 있다면, 어떤 맛일까? 아마 처음에는 짭조름할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마음의 물결이 살짝 흔들리고, 그 흔들림에서 아주 미세한 눈물의 맛이 배어 나온다. 그리움은 언제나 조용히 스며들어 오니까. 그러다 어느 순간, 달고 쓴 맛이 동시에 밀려온다. 함께 웃던 얼굴, 따뜻하던 목소리, 손끝에서 전해지던 온기. 시간이 데워 남긴 기억들은 달콤하지만, 그걸 다시 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쓴 약처럼 혀끝에 남는다. 그래서 그리움은 늘 달콤 쌉싸래한 맛을 띠며 마음속을 맴돈다. 오래된 그리움은 은근히 뜨겁다. 불꽃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잊은 줄 알았던 마음을 다시 데워 올리는 작은 매운맛. 그 매운맛이 문득 가슴을 찌르면,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텁텁함이 남는다. 그리움이란 본래 완성되지 않은 문장 같아서, 끝에 언제나 작은 공백이 붙어 있기 마련이다. 그 공백을 씹다 보면 나도 모르게 조용해지고, 그제야 그리움은 비로소 입안에서 사라진다. 내 방에 걸려있는 ‘그리움’ 시화(詩畫)가 애틋한 눈빛으로 노래가 되고 싶어 하는 느낌을 받아, 발라드 형태의 노래를 만들었다.‘그리움을 달빛에 정갈히 씻어/보드란 꽃잎으로 꼬옥 꼬옥 싸영롱히 비치는 별님에게 보낸다/깜빡 깜빡이는 별빛 보며애타는 내 마음을 정녕 안다면/그대여 사뿐히 내게 날아와이 밤이 지새도록 고운 노래 불러주오’(그리움 권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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